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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아포리아]좋은 부부관계의 열쇠 ‘황금률’과 ‘서(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부부 사이에도 함무라비 법전의 원칙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배우자에게 받은 고통이나 상처만큼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이 실현되는 순간이 바로 부부 아포리아(난관)에 빠지는 순간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상대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함무라비 법전이 보복을 강조했다면 고대 바빌로니아가 200년 동안 번영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복수 주의처럼 보이지만 법전의 원칙에는 눈을 다치게 한 사람을 죽이거나 팔, 다리를 자르는 등 지나친 처벌(보복)을 하지 말라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만약 피해자가 강자이고 가해자가 약자일 경우 피해자의 복수는 더욱 잔인해진다.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피해자인 나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복수는 계속된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등 정의 구현을 추구한다.

부부 사이에서 복수가 과연 관계에 도움이 될까? 상대의 복수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함무라비 법전의 원칙처럼 부부 사이에서 잘못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황금률로 불리는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이다. 이 이야기를 자칫 잘못 생각하면 내가 좋다면 당연히 배우자도 좋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고기 먹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배우자와 함께하기 위해 매일 고기반찬만 한다. 본인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배우자를 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문제의식이 없다. 그런데 만약 배우자가 채식주의자이고 고기 냄새만 맡아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나에게 좋은 것이 상대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사람마다 좋음과 싫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좋아하는 것이라도 상황에 따라 좋음과 싫음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삼시 세끼 그것만 먹다 보면 더는 먹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한동안 그 음식을 찾지 않고 피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좋음(싫음)과 옳음(그름)은 다르다. 즉, 좋은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옳은 것으로 착각하여 배우자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우리는 자신이 싫어하는 방식을 강요받기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접이 아니다. 대접받는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나를 대한다는 의미이다. 황금률은 내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배우자가 좋아하는 것은 하려고 노력하고 배우자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황금률의 중요한 의미다.

논어 ‘위령공’편에도 황금률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토록 실천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서(恕)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이언)”

내가 싫어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존중과 배려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구성돼 있다. 상대와 같은 마음이 된다는 의미이다. 같은 마음이 되려면 상대의 마음도 내 마음처럼 소중하게 생각할 때 가능하다.

부부 사이에서 좋음과 싫음이 같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나와 배우자 모두 ‘좋음’이면 하면 된다. 나와 배우자가 모두 ‘싫음’이면 하지 않으면 된다.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좋음과 싫음이 다를 때 발생한다.

나는 싫음인데 배우자는 좋음일 때는 ‘황금률’을 생각하자.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를 대접하는 사람을 우리는 좋아한다. 나는 좋음인데 배우자는 싫음일 때는 ‘서’를 생각하자.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좋아한다.

좋은 관계는 좋은 사람과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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