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대학 시절
[아침시산책]대학 시절
  • 경기신문
  • 승인 2019.02.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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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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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 문학과지성사·1996

그때는 그랬다.가난한 학부모들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소를 팔고 땅을 팔았다. 가족 구성원 중 가장 똑똑한 한 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족의 희생도 이해되던 때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때의 대학은 일종의 낭만과 지성의 표상이었지만,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슬픈 별명을 갖게 되었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국가의 발전과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짐 진 자들의 장소였다. 그 곳에 사회적 여건이 개입하면서 ‘그 곳에서는 나뭇잎조차도 무기로 사용되었다’. 대학을 떠난 육체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지고, ‘기관원이 된 후배’나 ‘침묵하는 교수’는 총성의 동조자라는 시대의 죄인으로 남는다. ‘나’ 역시 불후한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이, ‘외톨이’가 됨으로 증명된다. 선의 힘이 생성과 성장을 가져온다면, 악의 힘은 파멸과 추락을 가져온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힘, 거칠게 밀어부치는 힘, 전적으로 무자비하게 소멸시키는 힘, ‘버려진 책들’은 무자비한 힘에 추락한 이 땅의 희망들이다. 졸업을 맞이하지만 정작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운 존재들, 비 양심에서 비롯된 하나의 힘은, 추락으로부터 시대의 방랑자를 출산하였다./박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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