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통찰]‘산천어축제’에 대한 유감
[사유와 통찰]‘산천어축제’에 대한 유감
  • 경기신문
  • 승인 2019.02.10 18:28
  • 댓글 0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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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정 정책공감연구소장
이세정 정책공감연구소장

 

산천어인 ‘아롱이’와 ‘다롱이’이는 제천에 있는 산천어 양식장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2019년 1월 2일, 양식장 주인이 대기하고 있는 여러 대의 수족관 차량에 물고기 모두를 옮겨 태웠다. 물론 아롱이와 다롱이도 같이 실려갔지만 다행히도 같은 차량에 있게 됐다. 오랜 시간을 수족관에 갇혀 이동하다 보니 다른 물고기와도 부딪치기도 하고 산소도 부족해 몹시 고통스러웠다.

아롱이가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응, 아마 양식장보다 더 좋은 데일꺼야. 사람들이 우리를 넓은 강과 바다로 보내주려는 것이 아닐까? 희망을 갖고 조금만 힘을 내, 응?” 다롱이가 불안해하는 아롱이를 위로했다.

약 3시간여를 달리던 차량은 북한강 지류인 화천천변에 도착했다. 산천어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하며 물고기들을 마중나왔다.

“아롱아, 내말이 맞지? 여기 강가야. 우리를 강에 풀어주려나 봐. 북한강을 계속 헤엄치다 보면 바다로 갈 수도 있어. 저 사람들이 우리를 무척 반가워하고 있어.” 다롱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응. 그래 네 말이 맞았네.”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물고기들을 하천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하천에 놓인 물고기들은 2.1㎞ 구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북한강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물속에 그물을 쳐놨기 때문이었다.

개막 3일 전에는 잠수부들이 하천 얼음을 뚫고 들어가 그물이 느슨한 곳을 샅샅이 점검하여 단단히 동여매기까지 했다. 더 큰 문제는 그 하천에 먹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행사 첫날에만 방류된 물고기가 17만 마리나 돼 천연먹이 (물벼룩 등)는 금세 고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방류 5일 전부터 먹이를 주지 않았다. 낚시꾼들이 내린 미끼를 쉽게 물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아롱이와 다롱이는 그제야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차라리 양식장에 있을 때가 좋았다. “다롱아, 나 너무 배가 고파” 아롱이가 고통스럽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 인간들이 내린 미끼를 절대 먹으면 안돼! 그러면 죽어. 넓은 강과 바다로 자유를 찾아가는 꿈은 물거품이 되는 거야!” 다롱이는 허기에 지친 아롱이를 달랬다.

산천어축제는 1월5일부터 1.27일까지 23일간 계속됐다. 축구장 70배 만한 얼음판위에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얼음판 낚시구멍이 2만개에 달했다. 얼음 밑에 있는 굶주린 물고기들이 낚시바늘에 걸려 하릴없이 죽어갔다.

축제 23일 동안 하루 평균 7만여 명이 이곳에서 낚시를 했고, 축제 관계자들은 계속 물고기들을 가져와 부족한 공급량을 보충했다. 23일간 180t 분량 (약 80만 마리)의 산천어가 투입된다. 물고기가 낚일 때마다 낚시꾼들은 기쁜 함성을 질렀고, 넓은 얼음판 위에는 피를 흘리며 발버둥 치는 물고기가 수만 마리였다.

캄보디아내전 당시 대량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킬링필드(killing field)’의 한 장면 같았다. 낚시꾼들은 대형 화로 속에 넣어 구이를 만들어 주거나, 날카로운 칼로 회를 떠주는 곳으로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갔다.

남녀노소, 내외국인, 심지어 유치원생 같은 아동들까지 2~3마리의 물고기들을 들고 긴 줄을 섰다아롱이와 다롱이는 굶어 죽은 물고기와 낙시바늘에서 분리된 미끼를 찾아 먹고 서로를 의지하며 23일간을 무사히 버텨냈다.

굿굿하게 살아남은 아롱이와 다롱이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대견했다. 하지만 이 작은 희망도 이내 산산조각 났다. 남은 물고기들은 모두 어묵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판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필자가 산천어축제의 마지막 날인 1월 27일 이곳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구상해 본 콩트다. 오후 5시쯤 축제장을 나오려는데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살생교육 인과응보”라고 쓰인 법복을 입고 있었다. 스님에게 공손히 합장인사를 하고 버스터미날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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