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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명절 증후군

 

며칠을 복작거리면서 모처럼 모이는 식구들 입바라지를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했다. 연휴 내내 가게를 쉬지 않고 명절을 지내려니 이젠 힘도 들고 점점 꾀도 난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힘을 덜 들일 수 있을까에 마음이 가고 음식 가짓수도 양도 점점 줄이게 된다.

예전에는 어린 조카들 생각에 아이들을 위한 반찬이나 주전부리를 준비했는데 이제는 군대도 다들 다녀오고 학교도 졸업을 해서 옛날 같으면 애들을 낳았을 나이가 되어 따로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훨씬 수월해 졌다.

조카들이 어릴 때에는 기껏 방문을 바르면 하루도 못 가서 문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방을 드나들면서 신발은 되는대로 벗어던져 방문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짜장 떡볶이를 해주면 시커먼 입술로 오물거리며 먹는 게 귀엽고 달고나가 부푸는 동안 국자 옆으로 손이 오면서 큰엄마는 요술공주라고 하는 아이들이 힘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설날 아침에도 떡국에 몇 가지 명절음식을 준비해서 간단하게 상을 차린다. 그것도 참석하는 인원을 확인 한 후에 많이 남지 않도록 양을 조절한다.

점심때가 되면 벌써 떡국은 안 먹고 싶어 하는 눈치라 제일 쉬운 방법을 찾는다. 다들 그렇겠지만 주부들에겐 고기가 제일 편하다. 올 해는 LA갈비를 준비했다.

넓은 팬을 꺼내고 자리를 잡고 앉아 고기를 구우면 술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먹을 사람들이 알아서 척척 챙긴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집안을 채우고 목소리들이 커지고 불그레한 얼굴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몇 차례 들락거리면 해는 저 혼자 슬그머니 산을 넘었다.

먹는 것도 일인지 다들 벽에 기대고 소화도 시킬 겸 당구라도 치고 PC방이라도 들렀다 온다며 밖으로 나갔던 조카들의 손에 뜻하지 않은 선물이 들려있다. 한 겨울에 아이스커피를 빨대까지 꽂아 주며 넉살좋게 웃는다.

처가에 가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일어나고 다시 시누이네 식구들이 오고 다음 사람들을 배웅하고 여기저기 집안을 돌아보면 언제나 그렇듯 이어폰이나 칫솔 양말 등 하나씩 흘리고 간 물건들을 보며 모였던 식구들을 떠올리게 된다. 분실물도 예전과는 다르다. 아이들을 어릴 때는 조립 완구 부품이나 인형 옷을 떨구고 갔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부품을 두고 가는 것에서도 변화를 느낀다.

그런데 예전과는 다르게 뭔가 허탈한 느낌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분명 힘은 드는데 왜 그렇게 허전한지 생각해 보니 올 해는 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핑계로 음식 가짓수 빼고 양 줄인 만큼 맥이 빠진 것 같다. 식구들 좋아하는 음식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같이 먹고 조금씩 싸주던 걸 없애고 난 후유증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만 같다.

어머니도 친정 형제분들이 식구들을 데리고 오셔서 점심도 드시고 한참 얘기를 나누다 막상 가신다고 일어서면서부터 서운해 하시는 것 같았다. 늙어가는 서로의 모습이 애처로워 한참을 두고 차 문을 붙든 손을 놓지 못하시고 말씀으로만 잘 가라고 하신다.

얼마 남지 않아 우리에게 닥칠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짠하다. 명절이라고 때만 되면 찾아오는 식구들 생각하면 힘들어도 내년부터는 다시 하던 대로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니 앞에서 웃고 떠들며 먹는 모습 한 번이라도 더 보여드리려면 그 방법이 제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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