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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재래시장엔 인정과 활기가 있다

 

 

 

 

 

전통시장을 찾으면 언제나 사람 냄새 나는 인정과 활기가 넘쳐난다. 전통시장이 저렴하고 농수산물이 신선해 평소 자주 이용한다. 내가 즐겨 찾는 시장은 집에서 가까운 파장시장이다.

파장동은 파초가 많아 파장골 혹은 파장굴로 불렸다. 정조 임금이 입도(入道)에 만석거(萬石渠)를 축조하고 연(蓮)과 파초를 심었는데, 여기에 어른이란 뜻이 있는 ‘장(長)’ 자를 더하여 지명이 되었다. 정조 대왕이 그린 ‘파초도’는 보물 제743호로 지정될 만큼 정조의 파초도 사랑은 대단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장 입구에 ‘북수원시장’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 까닭은 이러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장이 침체기를 맞아 매출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전통시장인 파장시장이 공무원연수원이 이전하면서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시장 옆에 대형 마트가 들어오면서 상가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 전통시장이 대형 마트와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파장시장은 파장동 지명을 가져와 사용하다 파장(罷場)이라는 명칭이 장이 끝난다는 의미가 있어 이름을 놓고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2016년 ‘파장’이라는 말이 어감이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상인들의 공모를 통해 지난 2017년 1월 31일 자로 ‘북수원시장’으로 명칭을 바꾼 것이다.

북수원시장은 수원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오래전부터 관문시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원 장안구에서 소재하는 시장으로는 가장 큰 시장이며, 예전 5일장이 서는 날이면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 봇짐장수들이 집결하던 장소이므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나는 이곳을 이십 년 넘게 다니고 있다. 웬만한 상점에선 거의 단골손님으로 대접을 받는다. 특히 생선 가게 아저씨는 해물탕 재료를 사러가면, 빨갛게 언 투박한 맨손으로 홍합이나 바지락 고니 같은 것을 덤으로 막 담아주신다. 난전에서 채소를 놓고 파시는 할머니도 시금치나 달래를 한 움큼 더 담아주신다. 이렇게 할머니 한 분에게 채소를 사다 보니 손주들 거두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것을 시적 소재로 한 편의 시가 나올 수 있었다.

‘파장시장 난전에 펼친 상추 열무 풋고추/ 허리 굽은 백발 할머니 투박한 손으로/ 어머니 넉넉한 마음 덤까지 얹어준다// 한자리 쪼그려 앉아 팔다 남은 열무 석 단/ 해 질 녘 떨이할 때 손주들 눈에 밟혀/ 고된 몸 참참 면벽을 살아낸 긴 그림자// 삭신 쑤셔 허리 펴면 천근만근 삶의 무게/ 멍에 얹은 더딘 걸음 뒷모습에 워낭이 울고/ 노을빛 공양 올리는 골진 이마 되우 붉다’

- 진순분, ‘워낭 저물 무렵’ 전문

가끔씩 머리가 아플 때나 답답할 때면 나는 장바구니 하나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통시장을 찾아간다. 마치 여행하듯 훌쩍 떠나는 기분으로 시장을 만난다. 상인들의 활기찬 큰 목소리와 적극적인 행동들이, 무기력하고 나태해진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해준다. 전통시장에서는 훈훈한 인정과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어느 때는 서로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마저도 사람 살아가는 현장이려니 생각하게 된다.

그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다가 근래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온 이곳에는 지하에 대형 마트가 있어 생활에 편리함과 동시에 문화시설이 구비돼 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정이 가지 않는다.

내가 촌스러워 그런지는 몰라도 예쁘게 진열된 소량의 채소들과 전자 렌지에 데워 먹기만 하면 되는 가공식품들이 즐비하다. 젊은 사람들은 편하게 모두 그런 음식을 사 간다. 참 편한 세상이긴 하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지어 밭에서 갓 수확한 싱싱한 채소를 사는 즐거움이 없다.

시장은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하는 데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고 인정이 넘치는 곳, 신선한 농수산물, 정육 등 풍부한 전통시장을 오늘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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