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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인간이 남긴 가장 위대한 역사 기록은 단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의 이야기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의 침략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에 武帝는 가장 지략이 뛰어났던 장군 이릉(李陵)으로 하여금 흉노를 징벌 할 것을 명했다. 보병 오천여 명을 이끌고 나간 이릉 장군은 장렬하게 싸웠으나 적진에 밀려 항복했다.

그런데 이듬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당연히 죽은 줄 알았던 이릉이 적군에 투항하여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황제는 불 같이 노하여 장군 이릉의 일족을 멸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어느 신하도 한 마디 말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당시 太史公의 자리에 있던 사마천이 이릉 장군을 옹호하며 나섰다.

“이릉은 오천의 군사로 적진에 들어가 용감하게 싸웠으나 원군은 오지 않고 배반자까지 나오는 바람에 역부족으로 항복했습니다. 그가 흉노에 투항한 것은 장차 보복할 기회를 얻기 위함인 것으로 사료 되오니, 차제에 폐하께서는 그의 공적을 늘려 알려 주시는 게 옳을 듯합니다”

이 말에 불 같이 화가 난 무제는 그를 투옥 시키고 궁형(宮刑)에 처할 것을 명했다. 궁형이란 남자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것으로 가장 치욕스런 형벌이었다. 궁형을 받은 사람은 비록 노비라고 해도 가문의 수치로 알고 스스로 자결하는 것이 관례였다.

허나 사마천은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삶에 집착했다. 그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마천은 그의 부친의 유언에 따라 史記를 집필 중에 있었다. 그는 죽음 대신 사기의 완성에 전심전력했다. 그로부터 이년 후 사마천은 마침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역사서인 ‘史記’ 130권을 완성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사마천처럼 위기와 실패의 패착이 올 때가 있다. 이를 딛고 일어서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좌절하여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대, 지금의 인생살이가 참으로 힘들고 버거운가? 그렇다면 사마천의 궁형을 생각하라. 그는 치욕을 딛고 일어났다. 절망을 희망의 씨앗으로 삼았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한두 번 이겨낼 수 없는 위험이나 위기에 처한다. 그럴 때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자는 일어선다. 그 위기에 절망하는 자는 영영 주저앉는다. 때로는 목숨까지 버린다.

자살률이 높다고 야단이다. 그만큼 살기가 빡빡하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가 어릴 때부터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면이 있다. 자녀가 한두 명에 불과하니 과잉보호에 지나친 간섭이 많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과외선생을 붙이고 학원에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심지어는 대학생인 아들의 성적표를 보고 교수를 찾아가 따진다고 한다. 그런 아이가 커서 어떻게 이 각박한 사회에 적응하겠는가?

적당한 위기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켜보는 게 좋다. 일일이 간섭하면 안 된다. 그게 곧 그 아이의 위기대처능력을 떨어뜨린다. 그대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처한 위기가 생식기를 잘라낼 만 한 치욕스런 절망의 구렁텅이인가? 그렇다면 일어서라. 그리고 기억하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당신이 가진 모든 재능과 능력을 다한 다음에 하늘의 뜻을 기다려라. 이게 사마천의 사기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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