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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신기섭



눈물을 흘릴 때 내 얼굴은 할머니의 얼굴 같다

입술을 내밀 때 내 얼굴은 외증조할머니의 얼굴 같다

먼 옛날 할아버지가 집어던진 목침에 맞아 이마가

깨진 할머니의 얼굴이 어느 날 내 애인의 얼굴에



가을, 붉은 단풍이 든다



- 신기섭, ‘분홍색 흐느낌’ / 문학동네·2006

 

 

가족은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근본이다. 사회적 관계망을 배울 수 있는 최초다. 개인의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불러도 저절로 훈훈해지는 이름이 어머니 혹은 아버지여야 한다. 그 다음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눈물을 흘릴 때 내 얼굴은 할머니의 얼굴 같다’가 아니라, ‘어머니의 얼굴’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신기섭 시인은 자신의 유전적 배경을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외증조할머니’에게서 찾고 있다. 그의 결핍은 최초의 사랑(엄마, 아빠) 부재에서 기인한다. 이는 한 개인의 지나친 불행감을 예견하게 한다. 불행은 불행을 연장할까. ‘이마가 깨진 할머니의 얼굴이 어느날 내 애인의 얼굴에’서 ‘단풍이 든다’. 폭력적인 할아버지의 유전성을 ‘나’에게서 발견하는 흐름들, 사랑이 사랑의 적으로 변질되는 상처들, 상처의 무딤과 사랑의 약함들, 그는 비극적인 변화 속에서 좀 더 일찍 ‘시’를 만났고,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필자가 그를 만난 건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을 하였을 때, 시(詩)창작반에서였다. 수요일, 시 스터디에서였다. 붉은 도서관 난간에 기대어 김수영의 詩를, 기형도의 詩를, 눈을 감고 술술 외우던 청년, 시집 속 다른 시 제목 ‘안 잊히는 일’처럼 참 ‘안 잊히는 시인’. 그가 떠난 지 문득 14년이 흘렀다./박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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