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영양제의 꼴
[생활에세이]영양제의 꼴
  • 경기신문
  • 승인 2019.02.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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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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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남시인
이상남 시인

“선생님, 어린애도 홍삼 먹어요?”

“요즘은요, 알로 나오는 홍삼도 있대요”

“저는 철분 먹는데?”

“몰라요. 엄마가 주니까 먹어요. 그거 먹으면 똑똑해 진대요” 하물며 어린아이들까지.

눈에 좋은 약, 지방분해에 도움이 되는 약, 간 기능을 높여준다,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피부노화방지 등등. 열매나 뿌리 또는 씨앗 등에서 추출했다는, 홈쇼핑에서 동네 약국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몸에 좋다는 영양제. 하나 둘 사 들이다 보니 나 또한 하루에 먹어야 할 영양제가 한 주먹씩이나 된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하루 세 끼 밥 챙기듯 영양제를 챙겨 먹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요즘이야말로 영양제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들른 병원에서 광고판을 보다가 팔순의 어머니께 꼭 필요할 것 같아 ‘뇌 영양제’ 하나를 또 샀다. 설명서에는 노인의 기억력을 회복시켜주고 우울감과 불면증 등에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신경안정제를 드시고 잠을 청해야 하는 어머니께서는 하루에 드실 약을 챙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쇠약하신 듯하다.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지난 며칠간의 시간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모처럼 휴가를 얻어 시골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며칠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아이구, 어째 이래 마음이 편하노, 니가 같이 있으이 잠이 저절로 온데이”

어머니의 그 지긋지긋한 불면증을 잠시라도 이겨낸 건 역시 관심이었다. 자식들의 사랑과 관심이 그 무엇보다 효과적인 영양제요 보약이 되었던 것이다.

주위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들여다보는 초롱초롱한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본 적이 있다. 시선의 끝에 또박또박 박혀있는 활자 속으로 빨려들 듯 몰입하는 모습이라니. 무엇이 그 아이를 그토록 집중하게 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재밌니?” 라고 물어보았다. 싱긋 웃으며 올려다보는 환하게 빛나는 그 아이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일회적이고 자극적인 영상물이나 변화무쌍한 핸드폰 게임 등에 밀려 자주 보고 싶지만 자주 볼 수 없는 책을 읽는 풍경. 아이들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몰입하게 하는 책 또한 복잡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키워줄 아이들의 미래지향적인 뇌 영양제가 아닐까 싶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구하는 영양제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다양한 자연친화적이고 보다 인간적인 꼴을 한 영양제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먹어서 영양제가 아니라 땀 흘리며 하는 운동이나 만나서 활짝 웃을 수 있는 인간관계나 읽어서 흠뻑 빠져보는 책이나 본인이 직접 하는 예술 활동 등등. 비싼 돈을 들여 사먹는 영양제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는 비교적 강제적이지 않는 생활 속 풋풋한 영양제 말이다.

창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수치가 좋다는 오늘, 창문 활짝 열어젖히고 환기 한 번 시킨 후,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차 한 잔 우리고 싶다. 가슴께가 뜨거워지도록 천천히 차 향 음미하며 음악과 더불어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그 마음 따뜻해지는 시간이 오늘 나에게 선물하는 최고의 사치스런 영양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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