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부부아포리아]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약한 고리

 

농작물을 기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시기에 맞춰 거름과 비료를 뿌리고, 가뭄이 오면 작물이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대주어야 한다. 병해충을 막기 위해 농약을 뿌리기도 한다. 반드시 이런 고생이 수반되어야 크고 좋은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

농작물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나의 고생이 좋은 수확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농작물이 잘 자라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수확물의 크기가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해에는 수확물의 크기가 만족스럽지만 어떤 해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면 수확물의 크기가 달라지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미니멈의 법칙’을 통해 수확물의 크기가 달라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작물이 자라는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되더라도 결국 가장 부족한 조건에 맞춰 생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부족한 한 가지가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 사연의 주인공이 나와 출연자들과 함께 고민을 이야기하는 토크쇼가 있다. 특히 부부 사연이 나오면 관심을 두고 시청한다. 그런데 배우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비슷하다. 일단 배우자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배우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저 사람이 왜 고민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술을 많이 마시거나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이것 하나 좋아서 열심히 하는데 배우자가 이해하지 못해서 오히려 제가 고민이에요”

사연의 주인공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과도한 취미 생활,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막말, 절약이나 청결 등 자신의 비합리적인 신념 강요, 관심을 넘어선 집착 등 다양하다. 고민의 주인공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바로 ‘이것’이 부부 관계를 결정하는 ‘약한 고리’이다.

쇠사슬은 여러 개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 사슬을 양쪽에서 큰 힘으로 당기면 끊어진다. 이때 사슬의 전체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 약한 고리의 강도이다. 강한 고리가 아무리 많아도 약한 고리가 하나가 부서지면 사슬은 끊어지는 것이다.

부부는 생활 습관, 대화 방식, 가사, 양육, 교육관, 정치 성향 등 많은 연결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부부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은 배우자를 기분 좋게 하는 강한 고리의 강도가 아니라 배우자를 힘들게 하는 약한 고리의 강도이다.

고민 사연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약해지고 있는 고리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강한 고리에 안주한다.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약해진 고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배우자가 가진 고민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슬의 모든 고리가 강한 강도를 갖고 있다면 좋겠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는 항상 나타난다. 약한 고리를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부부 아포리아(난관)가 발생하고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외양간은 소도둑, 질병 등 외부 위험 요소로부터 소를 지키는 기능도 있지만, 소가 스스로 외양간을 나가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도 있다. 약한 고리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외양간 안에 있는 소의 작은 움직임에도 사슬은 끊어지고 소가 스스로 걸어 나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약한 고리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부부가 함께 그것을 찾는 일이다.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공통점은 문제 인식 부족이다. 고민 사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부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이유는 방송을 통해 부부 모두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행동이 고리의 강도를 지속해서 약하게 하는 공격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공격을 멈추고 행동의 변화가 시작된다.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배우자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