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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松시선]한글 과학화·대중화 이끈 주시경과 전덕기

 

 

 

한글의 대중화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던 한 소년의 깨달음과 결단에서 비롯됐다. 1892년, 17세의 주시경은 훈장이 글 뜻을 해석할 때마다 반드시 우리말로 풀이하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의 말이 있고 그 말을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이란 것이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선비들은 한문만을 글이라 하고 훈민정음은 돌아보지 않았으니 이것은 절대로 옳지 못한 일이다. 그 어렵고 힘든 한자에 비한다면 훈민정음은 얼마나 알기 쉽고 아름다운가? 그렇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훈민정음을 내가 빛내어 보리라.”

한글을 빛내리라 뜻을 세운 주시경(1876~1914)은 당장 서당을 나와 스스로 머리를 깎고 배재학당에 들어갔다.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던 주시경은 이곳에서 교사로 있던 서재필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서재필의 후원으로 인쇄소에서 일하며 공부하던 주시경은 항해술, 측량술, 의학은 물론 영어, 일어, 중국어에 이르기까지 배움의 폭을 넓혔다.

1896년 4월 7일 순 한글의 ‘독립신문’이 창간됐다. 한글 연구에 몰두하는 주시경을 주목하던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창간할 때 그를 회계 및 교보원으로 뽑았다.

주시경은 신문사 안에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과 함께 국문동식회를 만들어 국어 표기의 원칙을 깊이 연구했다. 또 ‘독립신문’에 기고한 논설을 통해 국문 전용, 국문법 제정 및 맞춤법 통일, 띄어쓰기 실행, 국어사전 편찬, 한문 시간을 줄여서 현대 과학 교육에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남대문 상동교회 목사 전덕기(1875~1914)도 한글 대중화 운동에 앞장 서는 주시경을 적극 후원했던 인물이다. 전덕기는 주시경을 상동교회에서 설립한 청년학원 국어강습소에서 국어문법을 가르치도록 주선했다.

한편 주시경은 대한제국 정부에 세종대의 정음청과 같은 국문연구소를 학부 안에 설치할 것을 상소했는데 1907년에 정부가 국문연구소를 설치하고 주시경을 위원으로 뽑았다. 주시경은 이곳에서 ‘국어문법’, ‘말의 소리’ 같은 우리말과 글에 관한 저서를 연달아 펴냈다.

1907년에 전덕기는 상동교회 안에 조선어강습소를 열었다. 이곳에서 주시경에게 배운 졸업생과 유지들이 뜻을 모아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조선어연구회로 발전했다.

조선어연구회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 말글을 지키는 성이었다.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8주갑(480년)을 맞은 1926년에 ‘가갸날(한글날)’을 만들었고, 1931년에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맞춤법통일안, 표준말 만들기, 큰 사전 만들기 및 한글 강습을 통해 한글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다.

1942년 일제가 우리 말글을 말살하기 위해 일으킨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회원 33명이 투옥되고 한징, 이윤재 두 분이 옥사하는 수난을 겪었다. 조선어학회는 해방 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한글 전용, 한글 가로쓰기, 《큰 사전》 편찬 같은 한글 과학화와 대중화 사업을 주도했다.

주시경은 상동 청년학원, 박동 보성학교를 비롯하여 20여 곳에서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한글을 가르쳤다.한글 교재와 도시락이 든 커다란 보를 손에 늘 들고 다니던 주시경에게 학생들이 붙인 별명이 ‘주보따리’다. 이때 주시경에게 배운 제자들 중에는 한글연구로 빛나는 업적을 이룩한 김두봉, 최현배, 이윤재, 장지영 같은 이들이 있다.

주시경은 전덕기와 같은 해(1914년)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전덕기는 39세, 주시경은 38세였다. 두 분 모두 마흔도 못 채웠으나 한글 연구와 보급에 굵고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독립신문’에서 일할 때부터 한글 전용을 부르짖었던 주시경. 그의 수제자 김두봉과 최현배 두 사람이 분단된 남과 북에서 한글 전용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통일 한국의 새 시대를 준비하며 남북한 공동으로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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