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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잡아 놓은 물고기

 

 

 

남편은 사실 낚시에 관심이 없는 남자다. 그런 남자가 낚시 도구를 사왔다.

“이게 뭐야?”

“친구들이 낚시터에 가자니까 나도 한 벌 사왔어.”

“당신 그 솜씨로 물고기를 낚아?”

“왜 이래. 왕년에 저수지에서 한 가닥 하던 솜씨야.”

“허이고야.”

나는 남편을 비웃었다. 새벽이 되자 남편이 웬일로 부스럭 거리며 일찍 일어난다.

“어디 가려고?”

나는 잠결에 물었다.

“친구들이 차타고 기다려. 나 낚시 다녀올게.”

난 남편의 낚시엔 관심이 없었다. 종일 뒈지게 일만 했다. 집에 오니 그때까지 남편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밤 11시나 됐나.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가 쳐다보자 그는 큼직한 물고기 한 마리를 쳐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 봐. 내가 낚은 메기야. 팔뚝만 허지?”

“그러네. 어디 봐요.”

나는 남편의 손에서 물고기를 받아들었다. 정말 팔뚝만 했다.

“이걸 어떻게 잡았어.”

“어허, 내 솜씨가 보통 아니라니까, 허허허.”

남편의 웃음소리에 내가 미심쩍어 물었다.

“혹시 이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사들고 온 건 아니지.”

“이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허허허.”

나는 물고기를 큼직한 대야에 담고 물을 가득 부었다. 그때까지 메기는 눈을 껌벅거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은 모처럼 매운탕을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날이 샜다. 나는 부리나케 주방으로 들어갔다. 물고기가 있는 대야를 보았다. 깜짝 놀랐다. 물고기가 없어졌다. 그야말로 잡아 놓은 물고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보 물고기가 없어졌어.”

남편은 잠옷 바람으로 뛰어 나왔다. 그는 눈을 의심했다.

“아니, 대야 속의 물고기가 달아났을 리도 없고. 어디 한번 살펴봐.”

아무리 찾아봐도 물고기는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물고기가 튀어나와 창밖으로 달아났나? 혹시 옆집 고양이가 물고 갔나? 어쨌든 잡아 놓은 물고기는 사라졌다. 행방도 모르게.

나는 생각했다. 이게 어찌 물고기뿐이랴. 살다가 보면 별별 것이 다 없어진다.

초등학교 때 외운 구구셈까지도 까먹을 때가 있다. 멀쩡하게 얼굴에 얹혀 있던 안경도 사라진다. 만년필도 소리 없이 없어진다. 물건만 그런 게 아니다. 아는 사람도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대면을 해도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더더구나 답답한 일은 사람의 마음이다. 저 사람만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비밀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비밀이 그 사람을 통해 새나간다. 이성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불붙었을 땐 천년만년 이어질 것 같던 사랑도 사소한 일로 등을 돌린다. 한번 가버린 사람의 마음은 달아난 물고기처럼 잡을 길이 없다. 그러니 그 사람이 가기 전에, 그 친구가 돌아서기 전에 잘해야 한다. 노래 가사에도 있지 않는가. 있을 때 잘해, 있을 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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