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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주시(注視)와 침묵(沈默) 그리고

 

 

 

‘보다’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사물과 눈 그리고 빛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주요 조건은 사물과 눈 사이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하다. 즉, 손바닥과 눈 사이에 거리가 없을 때는 손바닥 자체를 볼 수 없기에 ‘눈을 가리다’ 또는 ‘보지 않는 행위’로 정의된다.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기능에다 보는 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는 방식과 유형들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본다는 것’은 외부세계로 향하는 의식적 행위를 일컫는다. 사람의 눈은 밖을 향해 열려있으므로 나보다는 남들을 더 잘 살필 수 있고, 자신의 내면보다는 외부세계를 지향하게 됨은 당연하다. 반면에 육체적인 시각기능과는 무관하게 스스로의 내면을 관찰할 때에도 ‘보다’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외계의 어떤 목표물에 주의를 집중하여 볼 때를 ‘주시(注視)하다’라고 한다. 반면에 자신의 내면을 밝게 비추어 의식의 흐름과 작위(作爲)하는 스스로의 행위에 집착됨 없이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를 ‘관조(觀照)’라 한다. 이는 불교수행법인 지관(止觀)과도 유관하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위파사나이며 능견(能見)·정견(正見)으로도 번역된다.

한 사람이 외부세계와 거리를 유지하며 세상을 주시할 수도 있고,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며 늘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향했던 인물들이 없지 않았으며 그들을 ‘처사(處士)’라고 칭하며 존경했다. 처사는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로, 부귀공명에 뜻은 없으나 세상을 주시하고 깊은 학문과 수행으로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이 되었다.

세 명의 정승은 한 명의 대제학에 못 미치며, 세 명의 대제학은 한 명의 처사보다도 못하다(三政丞不如一大提學, 三大提學不如一處士)라는 말이 있다.

대제학은 정2품의 관직이나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위치로 학문을 숭상했던 조선유교사회에서는 왕사에 준할 정도의 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직급에 비해 판서와 정승들 못잖은 권위와 예우를 받았음은 당연하다.

그러한 대제학 세 명도 당할 수 없다는 처사의 위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가?

아마도 조정(朝廷)과의 거리를 두며 주시자로 남으며, 또한 자신과도 거리를 유지하여 관조하는 자의 침묵이 아닐까 싶다. 지켜야할 관직이나 재물이 없으며 목숨 또한 초개(草芥)처럼 여기는 당대 지성들의 주시와 침묵 그리고 그들의 일갈이 왕후장상들에게는 늘 의식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맞이하는 3·1절이다. 오로지 하나의 열망으로 모두가 하나되어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함성의 그날 이후 100년이 흘렀다. 정부는 물론 많은 뜻있는 단체들이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긴시간 동안 준비해 왔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은 여러 곳에서 거행될 것이며 기념 이후에 우리는 또다시 3월 2일을 맞게 될 것이다.

필자의 소망은 이번 3·1절 만큼은 하루의 행사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100년 전 선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바랐던 외침들에 깊이 공명하며, 분단 이후에도 또 다시 내부분열과 혼란의 연속인 지금의 우리 모습을 반성하며 관조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사회에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우선 주시하는 여유를 갖고 침묵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각자들의 판단과 행동들은 무게를 얻게 된다. 다수의 국민이 공통의 문제에 대해서 주시와 침묵을 유지할 수 있을 때 하나되는 함성을 울릴 기회도 생긴다. 그럴 기회가 많을수록 그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한국이 월드컵경기의 결승전에 올랐다고 가정하자. 그것도 독일과 연장 후반전에서 2:2로 비겨 승부차기가 진행 중이다. 더구나 조현우 선수가 이번 한골만 방어하면 우승이다. 그 상황에서는 분명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열망담긴 주시와 침묵의 시간이 흐를 것이 분명하다. 잠시 후 전국에서 온 국민들의 와~하는 함성소리가 연이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서로 견해가 달라 다툴지라도 하나되어 얼싸안는 기쁜 일이 더 많은 나라를 꿈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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