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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3·1운동 기폭제 ‘포고문’

“오 슬프다. 우리 2천만 동포여. 대행 태상께서 돌아가신 원인을 아는가 모르는가.… 윤덕영·한상학 두 적신으로 하여금 두 시녀에게 아침 식혜에 독약을 넣어….” 1919년 1월 손병희 선생 이름으로 발표된 ‘고(告)국민대회’ 포고문이다. 모두 616자로 된 이 포고문은 “1)파리 강화 회의에 일제가 마련한 ‘한국민족은 일본의 어진 통치에 순종해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각계각층의 대표자 명의로 된 조작증명서 서명에 고종이 크게 진노했고, 2)일제는 친일파인 윤덕영·한상학을 사주하여 독살을 꾀해, 3)고종의 식사를 받드는 두 명의 궁녀를 매수하여 야참 식혜에 독약을 넣어 시해했다”고 기록했다. 포고문은 독이 든 식혜를 마신 고종 황제의 용태도 구체적으로 기록햇다. “이를 드신 황제께서는 옥체가 물과 같이 허물어지시고 뇌가 파열되시며 아홉 구멍에서 피가 솟아흐르며 즉시 붕어하셨도다. 이 심통을 어찌 말로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일본인 혹은 친일파에게 독살당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거기에 고종의 국장(國葬)은 조선총독부가 임시로 설치한 장의괘(葬儀掛)가 주도하면서 3년여에 걸쳐 장중하게 진행되는 조선왕실의 국장에 비해 축소되고 변형됐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나라를 잃고 일제의 식민 통치에 억눌려 있던 민중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포고문에는 이런 내용도 담겼다. “독약을 탄 두 궁녀에게도 남은 독약을 마시게 하여 죽여 입막음 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 따라 해외동포들이 국권회복운동을 펴는데 국내에서 이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겠느냐”면서 국권회복과 민족을 구하고 고종과 명성황후의 원수도 씻을 수 있으니 봉기하자고 촉구한 내용이 그것이다. 이 포고문은 결국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모으며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고종의 국장은 이후 항일독립운동에서 중요한 항쟁으로 꼽히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종의 국장을 다시 살펴보는 전시가 오늘부터 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제목은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이다./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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