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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는 아테네 최고의 영웅이다. 그는 전장에서 아테네의 청년들을 구출하여 돌아온다. 그 때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를 기념으로 전시하였는데, 세월이 흘러서 이 배가 부식되기 시작하자 널빤지는 하나씩 하나씩 교체됐다. 그렇게 널빤지가 교체된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 할 수 있는가? 일부 교체된 정도라면 테세우스 배와 동일성이 유지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배의 모든 부속을 다 교체하게 되었다면, 이때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본질이라는 것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른 것과 다르게 그것을 그것답게 하는 것을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절대 변하거나 훼손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이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한 번 해 보자.

홉스가 테세우스 배의 목재를 교체할 때 헌 널빤지를 빠짐없이 다 모아서 다시 조립하여 배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 완성 조립된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 홉스의 배인가?같은 의미로 원래의 테세우스의 배는 새로 다 교체되었기에 이 배는 새 테세우스 배 즉 전혀 다른 배라고 할 수 있는가? 정작 이 배는 원래의 테세우스의 배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면서 그저 조금씩 조금씩 오랜 세월 변해왔을 따름인데 말이다. 홉스의 생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배란 그 물리적 모습(형상)과 그 모습에 기초한 항해 능력이 본질이다. 만약 배의 본질(형상, 항해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면, 부분적으로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동일성이 유지된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홉스의 배는 헌 널빤지가 다 모일 때까지는 한갓 목재 상태로 대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기까지 목재 상태로만 있어야 하는 시간은 존재적 단절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홉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토마스 홉스의 논리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이 그 전의 것과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 지속가능한 상태로 있는 것, 타자들과 구별되는 정체성 같은 것이 것이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은 필자가 초심을 잃고 상막해진 삶을 살 때 꺼내어 다시 읽는 책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체로키 인디언인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작은 나무’ 이야기다. 고아가 된 작은 나무는 대대손손 체로키 족이 살아온 산골짜기 할아버지 집에 가게 된다. 이곳에서 작은 나무는 인디언들의 정신을 소소한 일상에서 배우고 익힌다.

이를테면 동부 체로키 인디언들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 동물을 잡고 식물을 체취하지만 일용한 양식이외의 것을 욕심 부리지 않는다. 자연들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잉여로운 인간이 아니라 공존하는 인간 정신을 체로키 족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배운다. 글도 못 읽는 이들의 가르침은 공부를 많이 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할머니는 작은 나무에게 인간에게는 두 개의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는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구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생활인인 우리가 늘 갖는 마음이다. 또 하나는 영혼의 마음이다. 몸의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해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만 해 지는데 그것마저 줄어 없어져 버리면 사람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걸어 다니는 죽은 사람을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할머니의 말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드러내는 것 즉 인간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날로 뛰어나 4차 혁명도 좋고 의료기술의 발달로 150세가 가능한 시대를 만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것들이 인간을 인간이지 못하게 만든다면 무슨 소용일까. 아무리 많이 안 들, 제아무리 많이 가진들 우리가 걸어 다니는 죽은 사람이라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껍데기만 인간이라 하지 않게 이쯤에서 우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는 정신적 가치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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