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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장갑의 실권

 

서랍을 열어보니 낯익은 장갑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늦은 가을 낙엽이 지고 날씨가 쌀쌀해 지면 장갑부터 찾았다. 추운 날 장갑은 필수품이었다. 밖에 나가려면 모자는 없어도 장갑은 꼭 챙겼다.

겨울엔 친한 사람 생일에 장갑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 뜨개질을 좋아하는 사람은 예쁜 털실로 장갑과 목도리를 떠서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고 뜨개질이 서툰 사람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뜨개질을 처음 배우는 사람도 첫 작품이 목도리였다.

그냥 길게 뜨면 어떻게 해서라도 완성을 하게 되고 남이 보기엔 허술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되면서 머리띠나 모자를 뜨면서 차츰 벙어리장갑에 도전을 했다.

예전에는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털실로 짠 옷이 작아지면 동생에게 물려 입히기도 했지만 풀어 새 실을 보태 새로 옷을 짜서 입었다. 그도 마땅치 않으면 한가한 농한기에 따뜻한 방에 모여 앉아 뜨개질을 했다. 실이 여유가 있으면 조끼를 뜨기도 했고 많이 보태야 할 경우에는 모자나 장갑으로 재탄생 했다.

그렇게 사랑 받던 장갑이 어느 날부터 멀어졌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외기에 노출 되는 시간이 짧기도 했고 지구 온난화로 춥지 않은 겨울이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으나 결정적인 동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핸드폰의 등장이었다. 그래도 처음 핸드폰이 나왔을 때에는 크기가 커서 버튼을 누를 때만 한 쪽 장갑을 벗고 이용했다. 그러나 핸드폰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두 손가락으로 자판을 능숙하게 찍는 이른바 엄지족들은 장갑을 입에 물고 문자를 찍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장갑이 지금처럼 내쳐지지는 않았다. 바야흐로 스마트폰의 등장은 장갑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추운 날 어쩌다 장갑을 끼고 나가면 잃어버리기 일쑤고 주머니에 넣어도 불편해서 어지간해서는 장갑을 끼는 일이 없다.

서랍 속에서 잠자는 장갑들은 종류도 여러 가지였고 나에게 오게 된 사연도 다양했다. 우선 재질로 보면 가죽장갑도 얇은 가죽 홑겹으로 만든 장갑과 속에 기모로 된 안감을 넣고 밍크로 손목을 장식한 장갑도 있고 털실로 짠 장갑도 있는데 우윳빛 앙고라 실에 구슬을 달고 수를 놓은 장갑도 있고 색색의 털실을 섞어 색동으로 짠 장갑도 있다. 그러면서 장갑은 점점 목적에 맞게 세분화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주방에서 쓰이는 고무장갑과 얇고 간편하게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위생장갑도 있다. 거칠거나 지저분한 것을 만질 때 손을 보호하기 위한 실장갑이나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장갑도 있고 운동선수들을 위한장갑도 있고 등산이나 골프처럼 레저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장갑도 있다. 그리고 백수갑(白手匣)이라고 해서 잠깐 당황하게 했던 의전용 흰 장갑도 있고 여자들이 성장을 했을 때 착용하는 레이스장갑도 있다.

그렇게 장갑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 단순한 방한용 장갑은 서서히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벌써 몇 해를 한 번도 찾지 않고 넣어 둔 장갑을 이제는 해방을 시켜줘야 할 것 같은데 나도 사용하지 않는 장갑을 입양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갓 깨어난 버들강아지가 반짝이는 눈으로 하늘을 보고 웃는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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