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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길 위에 서다

 

안개가 물러서자 길이 깨어났다. 둥글게 말린 길이 제 끝은 멀리 두고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나무는 안개를 털며 봄볕을 끌어들이고 가까이 미루나무에 까치가 분주하다. 아직은 바람이 차지만 바람에는 봄이 들어있다.

그 봄볕 맞이하며 길 위에 선다. 무겁던 들판이 조금씩 환해진다. 마디 끝에 새순을 볼록하게 품은 나무와 눈을 맞추고 땅을 들어 올린 냉이 앞에 걸음을 멈춘다. 지난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았으니 땅 밑 겨우살이도 그리 힘겹지만은 않았을 성 싶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저 둥글게 말린 길은 야산이었다. 대단위 아파트가 건축되면서 공원이 되고 길이 되었다. 산이 길이 되기까지 주민들의 반대와 건설사의 힘이 팽팽했지만 결국은 길이 되었고 주민들도 저 길을 걸으며 안정을 찾았으며 새로운 이웃이 생기고 변두리 마을에 상가와 맛집 등 이런저런 상권이 형성되면서 제법 도시를 형태를 갖춰 가고 있다.

우리네 삶이 길 위에 있듯 길은 길로 이어지고 삶은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새로운 길은 길이 끝나는 곳부터 다시 시작되고 계절 또한 계절의 끝에서 새로운 계절을 연다.

봄은 시작이다. 졸업과 입학, 취업 등 많은 일이 새롭게 시작된다. 그 시작 앞에서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다짐을 새롭게 하면서 출발선상에 서게 된다. 더러는 곧게 뻗은 포장도로를 거침없이 달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진흙탕도 건너보고 징검다리도 뛰어넘으며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갈 것이다.

매순간 이정표도 없는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되고 순간의 선택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잘못 접어든 길에서 바로 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돌아올 길이 그나마 짧겠지만 무작정 달리다 어느 순간 절벽 앞에 섰을 때의 막막함과도 맞서게 된다. 건너뛸 수도 없고 돌아설 수도 없는 막다른 절벽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고뇌하면서 다시 방법을 찾고 일어서며 삶의 지혜와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기도 한다.

우리는 길 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인생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좌절과 맞선다. 가는 곳마다 걸리는 빨간 신호등이 야속하기도 하고 때론 생의 템포를 늦추게도 하지만 빨간 신호에 걸려있는 동안 우리는 달리는 길의 방향과 속도를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점멸등보다 잠시 멈춰서는 빨간불이 안전함을 알기까지는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하게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몸으로 익히기까지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된다. 적어도 남들 건너는 속도만큼은 따라가야 하고 적어도 남들 달리는 만큼은 달려야 현실에서 밀려나지 않을 거라는 강박관념이 옥죄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호를 무시하고 아니면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면서 상대방을 불안과 위험에 빠뜨리며 달려 나간 차도 결국은 다음 신호대기에서 만나게 된다. 토끼와 거북이가 주는 교훈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믿고 자신이 선택한 일은 존중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걷다보면 생각은 흐르고 멈춤을 거듭하며 길을 내어준다. 살아내는 일상 모두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경험이고 인생이 된다. 익숙한 길이지만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듯 그 길에서 우리는 희망을 말하고 도전하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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