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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하노이의 빛과 그림자

 

 

 

베트남 하노이에 평화와 화해의 물결이 잔잔하게 일었다. 세계 46개국에서 온 시인 작가 200 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시를 낭송하며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4회 베트남 국제작가대회와 제3회 국제 시 축제 분위기다. 각기 언어와 이념은 달랐지만 이념을 넘어 다양한 언어의 리듬을 타고 마음만은 하나로 모아졌다.

그간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를 주도해 한국 작가들의 땀과 노력이 흠뻑 배어 있는 하노이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이기도 하여 이번 하노이 시 축제는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자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복잡한 질곡의 역사를 지나왔지만, 한국 작가들을 특별히 환대해 집으로까지 초대하는 베트남 작가들에게서 이미 과거는 베트남인 특유의 똘레랑스 속에 녹아버린 듯했다.

국제 시 축제 개막식이 열린 하노이의 ‘문묘’(Literature Temple)에는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최동호 시인은 톨레랑스에 화답하듯 ‘명검’을 낭송했다. ‘검의 집에서 일단 검을 뽑으면 그것은 검이 아니라 칼이다. 낡은 제집을 지키고 있는 검이야말로 천하의 명검이다.’ (‘명검’ 부분) 세상을 향해 휘두르던 칼이 이제 제 집을 지키는 명검이 되어 평화와 화해를 기대하듯 머리 위 거대한 고목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며 청중을 따뜻하게 감싸는 것이었다.

귀국 후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할 것으로 기대했던 하노이에서의 북미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새로운 세상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빛은 낯설고 두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플라톤의 ‘국가’ 7장의 ‘동굴의 우화’는 이와 관련해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 동굴에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앉아 있는데, 그들은 쇠사슬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벽면만을 보고 있다.

그들 뒤편 저 위쪽으로는 불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고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 나지막한 담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온갖 것들을 담 위로 운반하고 있다. 그러나 죄수들은 앞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람들이나 물건들을 볼 수 없고 단지 불이 벽에 비추는 그림자만을 볼 수 있을 뿐이어서 그들은 그 그림자를 실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가령 그 죄수 중 한 사람이 풀려나 실제의 세계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눈이 부셔 한동안 실물의 진위를 구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돌아가 다른 죄수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익숙하여 그 세계를 참이라고 믿고 낯선 세계는 거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편견이고 사고의 허약함이다. 새로운 세계로 태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른바 줄탁동시( 啄同時)가 필요한 것이다. 부화하려 할 때 알 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톡톡 두드리면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단박에 알아듣고 밖에서 쪼아주는 상호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뉴욕타임스는 북미간 합의 결렬을 두 정상 모두의 오판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양측의 간극이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둠 속에서 부화를 기다리는 병아리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려 할 때 어미닭이 따스하게 손을 내밀어 빛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일은 인간 세상에서는 요원한 것일까?

하노이 시 축제에 출렁였던 평화와 화해의 물결은 또 다른 그림자의 세계가 아닌지 새삼 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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