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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松시선]마음의 골짜기에도 피는 봄꽃

 

 

 

비록 미세먼지와 안개로 가득한 시대에 봄이지만 자연의 섭리로 봄은 성큼 다가 왔다. 그러나 아직 우리들 마음에는 겨울의 찬바람이 불거나 얼어붙은 채로 남아 있지 않은지 막 피어난 목련을 보며 되돌아보게 된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 사이에는 옛날 유명했던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현장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 철교의 가설공사는 세계 2차 대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일본군이 버마와 연결하는 주요 보급로로 이용하기 위하여 착수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은 전쟁 포로인 영국군 기갑부대 포로들을 강제로 총동원하여 이 철교 공사를 완공하였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포로들이 남방의 토질병인 학질에 걸려 죽었으며 또 수십만의 포로들이 부상과 이질로 어려움을 겪었던 처참한 현장이기도 했다. 콰이강의 다리 부근에는 철교를 건설하다가 죽은 포로들의 묘지가 지금도 있다.

이 철교는 영국군 포로들에 의하여 건설되었다는 사실 이외에 몇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철교는 가장 깊은 골짜기를 연결하였으며, 둘째 그 나라에서 가장 긴 철교이며, 셋째 일본군의 군 보급로로서의 결국 전쟁승리의 목적을 갖고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콰이강의 다리 보다 더 높고 콰이강의 골짜기 보다 더 깊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골짜기를 보면서 키에르 케고르가 말한 ‘단절’과 ‘심연’이라는 어휘를 생각하게 된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심연’과 ‘단절’에 대신 ‘소외’(Alienation)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폴 틸리히는 ‘결국 인간의 죄악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또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껴짐으로 혹은 느끼게 함으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지금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절과 소외의 소용돌이에 서있는지 모른다. 겨레는 남과 북으로, 국민은 보수와 진보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렇게 갈라져 누군가로부터 ‘소외’되었고 누군가를 ‘소외’하고 있다. ‘단절’이야말로 사랑을 거부하는 우리 속에 내재된 죄의 표출이자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 봄, 우리가 진정 피워야 할 꽃은 바로 사랑의 꽃 희망의 꽃이 아닐까.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을 다섯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출발인 것이다.

둘째는 존중 또는 존경하는 것이다. 상대의 위치를 인정하고 높여주는 것이 바로 존중이다. 이 존중의 마음이 바로 사랑이다.

셋째는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understanding)란 말의 영어의 뜻은 ‘아래에 서다’란 뜻이다. 사랑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낮추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넷째는 책임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권리 주장 이상으로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다섯째는 받기보다 주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는 일 그 사람이 바로 완전한 사랑을 이루는 사람이다.

지금 자연은 온통 새 희망 새 봄 꽃으로 만발하는데 우리의 마음의 골짜기에는 무슨 꽃이 피고 있을까? 서로 사랑으로 쓸어안고 용서로 회복하는 참 아름다운 심령의 꽃이 피는 새봄을 소망하면서 졸시 한편을 소개한다.

“우리 죄 없이 멀어졌다 해도 / 저 길목 어디쯤엔가 / 물빛 하늘이 열리고 / 뿌리의 되물림처럼 / 목젖 휘도록 합창 할 것이다 // 한 시절의 돌아섬도 / 기다림의 속절함도 / 순종의 날에 비 내릴 반가움으로 / 가슴가슴 다독이고 / 다만 부끄러워하자 // 한 빛으로 만나는 길목이 의미는 / 꿈속에서도 아름답구나.”

- 김윤환 ‘건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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