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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아파트 앞 초등학교 교문에 걸리는 현수막은 재미있다. 3월초에는 두 개가 걸렸다. ‘저 이제 학교 다녀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1학년 동생들아,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그 1학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급생인 아이들, 선생님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이 학교는 그런 현수막을 꼭 담벼락에 걸어서 아이들 키에 맞춰준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본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상투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높다랗게 거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속으로는 축하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 시키니까 마지못해 지난해 현수막을 꺼내어 그대로 달아놓은 건 아닌지, 변명하기도 어려울 객쩍은 의심까지 해보았다.

졸업 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런 현수막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일까?, 지긋지긋한 것들, 속이 다 시원하군!” 하고 돌아서는 건 아닐까?’ 괜히 심술궂은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저 따듯하고 참신한 현수막을 보며 가슴이 부풀어서 이 땅에서 현대적 학교교육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보게 되는 학생중심 현수막, 자율적 학교교육을 보여주는 현수막, 교육의 다양성을 구현한 현수막이 분명하다 싶어 하고, 이 학교에선 교실에서도 저렇게 가르칠 것이라는, 논리적이진 않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그 교육을 지지해주고 싶은 확신도 가졌다.

사실은 그 믿음이 논리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현수막 문구를 저런 식으로 아이들이 정하게 하면 전국 1만여 학교에서 각각 다른 2만여 개의 현수막이 아이들의 표정처럼 아름답게 펄럭일 것이다. 수많은 교실에서 그런 형태의 수업이 이뤄진다고 생각해보라! 이 나라는 얼마나 멋진 나라일 것인가!

학교경영의 자율화니 교육과정 운영의 다양화니 하는 말은 그동안 자주 들었다. 돌연 학교경영의 자율화가 강조되던 시기에 교장들이 모여 어떻게 해야 자율화를 실현하는 것인지 걱정을 늘어놓은 끝에 결국 “무슨 지침이 내려오지 않겠느냐?”는 기막힌 예측이 정답이 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학교교육과정의 자율화·다양화도 그렇다. 국가기준에는 각 지역별로 구현할 일, 단위학교별로 구현할 일이 자세하게 열거되지만 교사들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각 교과목별 시수 증감 수치를 맞추는 일에 급급하고, 행정적으로도 그 수치를 점검하는 일에 만족하는 한심한 장면도 봤다.

교사마다 창의적인 수업을 구상하고 학생들마다 제각기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활동을 전개할 때 교육의 이상이 실현된다. 1교 1기니 뭐니 하며 누가 시키니까 이 학교는 축구, 저 학교는 합주에 심혈을 기울이는 건 결코 다양한 교육이 아니다. 한때 취약계층을 위한 한국판 엘 시스테마 열풍이 불다가 금방 시들해진 것도 구호에 그친 자율화의 실체를 보여줬다.

교과서도 그렇다. 검인정 교과서는 학교별 선정 과정에서는 다양한 교과서가 비교·평가되지만 학생들에게는 결국 단 한 가지가 공급될 뿐이므로 그걸 다양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교과서는 학생용이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하겠지만, 학생들이 다양한 교재를 활용할 때 다양화가 실현된다. 메뉴가 다양한 식당에서 단 한 가지 음식을 먹게 하고는 다양한 음식을 제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자동차 그룹은 대규모 공채 제도를 직무 중심 상시 공채로 전환했다. 새로운 산업 환경에 맞는 융합형 인재를 적기에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한 반도체 회사는 3년째 수시 채용을 하고 있고, 어느 패션·섬유 그룹도 계열사별로 수시 공채를 진행할 계획이란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교육, 적어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이란 어떤 것일까?

가령 수시 입학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학습의 개별화는 당연한 일이 된다. 일제식 수업은 사라져야 마땅하고 개성에 따라 가르치고 배우는 개인별 학교가 성립된다. 획일적 교육, 지시명령에 의한 학교교육은 저절로 시들고, 자율화는 말려도 이뤄진다. 교육이 각양각색 아이들의 개성에 따라 이뤄지려면 다양성이 추구될 수밖에 없고 그런 교육은 자율적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시명령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는 미래를 주도하기는커녕 적응조차 불가능한 세상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낮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모든 아이를 다 성공시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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