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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화가 뭉크가 직접 들려주는 내레이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긴 화가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에드바르드 뭉크와 같이 다양한 뉘앙스와 장르의 글을 남겼던 화가는 드물었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글은 뭉크가 직접 완성하고 삽화도 그려 넣은 한 편의 판타지다.

“알파와 오메가는 그 섬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이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글은 첫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초 남자와 여자가 나누는 사랑과 이들이 창조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좀 기이한 이야기이다. 최초 여자인 오메가는 잠들어 있던 최초 남자 알파를 깨우고 그와 사랑을 나누지만, 곧 오메가는 뱀, 곰, 하이에나, 호랑이와 같은 동물과도 사랑을 나누고, 온갖 교배 잡종 후손들을 알파에게 보냄으로써 알파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글을 차치하고서라도, 뭉크의 그림에서 대다수의 여자들이 흡혈귀, 살인마, 방탕한 존재로 묘사되었으니, 뭉크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어느 정도 불가사이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여겼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성 해방, 성(性)의 해방을 부르짖으며 자기 파괴적인 강령을 부르짖었던 노르웨이 젊은이와 지성인들의 운동을 떠올려보자.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자신의 피와 살로써 표현해야 한다고 했던 뭉크의 예술관도 곱씹어보자. 조금만 더 관용의 시선으로 뭉크의 작품을 바라본다면 어둡고 공포스러운 이미지 뒤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뭉크가 매번 여성을 그처럼 끔찍한 모습으로 그렸던 것도 아니다. 1894년 작 ‘눈 속의 눈’과 같이 나란히 몸을 기대거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연인 역시 뭉크가 즐겨 그렸던 주제였으며, 이 작품들에서는 고요한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 담겨있다.

잠시 주제를 벗어났다. 유난히 글을 많이 남겼던 뭉크는 자기 작품에 대해 상세한 주석을 달기도 했다. 1892년 작 ‘환상’은 백조가 떠 있는 하늘빛 호수에 몸을 담근 채 머리만을 내놓고 있는 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뭉크는 이 작품에 대한 묘사를 무려 두 편이나 남겼다.

모두 물속에서 나와 백조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을 담은 글이었으며, 물속과는 달리 밝고 환한 세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백조의 존재가 이 남자에게 얼마나 먼 존재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들 역시 1인칭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뭉크는 자신의 연애담 역시 글로 남겼다. 이때에는 특이하게 자신과 연인의 모습을 3인칭의 시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뭉크의 연애 편력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관객들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들려주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그림은 곧 자신의 이야기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뭉크는, 자기 자신을 탐닉하기 위해 자신의 연애담을 3인칭 소설과 같이 객관적이면서도 자세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화가 뭉크는 글쓰기에서도 많은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글에서는 그림에서와 같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남긴 글은 풍부한 상상력과 상징성을 담고 있다. 이처럼 그가 글쓰기에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이 그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로부터 큰 영감을 얻었었다 한다. 같은 소설로부터 똑같이 감동을 받은, 그러나 정 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던 아버지와 이 소설에 대하여 크게 입씨름을 벌였던 일화도 전해진다. 그는 종교적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라는 인간의 영혼을 옹호하는 자신의 입장을 아버지와 기성세대를 향해 수없이 되뇌였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뭉크의 언어는 갈고 닦였을 것이다.

또한 청년기 그의 정신적 세계에 큰 영향을 줬던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아 운동의 중심에는 그의 동료이자 노르웨이 작가였던 한스 예거가 자리하고 있었다. 예거는 ‘수도사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멘’라는 소설을 발표한 이후 옥고를 치러야 했지만, 이 소설로 영감을 얻은 뭉크는 ‘훌다’, ‘그 다음날’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이렇듯 예술이란 자신의 삶으로부터 길어 올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뭉크의 작품들에는 뭉크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내레이션 역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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