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아침시산책]귀를 막다 - 하멜서신

귀를 막다 - 하멜서신

                         /신덕룡

길이 떠나고 난 자리가 온통 구멍이다.

언제 떠난다는

어디로 간다는 귀띔조차 없었으니

애시당초, 길은 내 안에 속해 있지 않았던 거다.

여운조차 남기지 않은

길이 빠져나간 내 몸의 사방은 왜 이리 깊고 어두운가.

오래전에 덮어둔 채 던져놓은 어둠 속에서

침묵과 침묵이 몸을 부딪쳐

흠집내며 질러대는 아우성이 이와 같은가.

그러니 숨죽이고

느닷없이 사라진 발자국 소리, 부재의 흔적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끝에도

더듬더듬 찾아야 할 길이 있다고 믿으면서.

- 신덕룡 시집 ‘하멜서신’

 

 

애시당초, 우리에게 길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모두 없는 길을 만들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어둠 속에서 표류하면서 더듬더듬 지탱해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길마저 나에게서 떠나버렸다고 생각해보자. 발을 디디는 곳마다, 내미는 곳마다 온통 구멍투성이일 것이다. 움푹움푹 빠져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이다. 마침내는 어둠 속에서 견뎌내야 했던 침묵들이 터져 나오며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 아우성에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귀를 막고서라도 우리는 길의 흔적을 찾아 나설 수밖에는 없다. 길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 길의 의미를 굳게 믿으면서./김명철 시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