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룡문]4월 첫 날의 ‘말’
[창룡문]4월 첫 날의 ‘말’
  • 경기신문
  • 승인 2019.03.3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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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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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라고 읊으면서 “겨울은 오히려 /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었다. /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라고 봄을 이야기했다. 시인이 생명이 움트는 봄의 기운을 잔인함에 비유한 것은 아마도 엄동의 겨울을 지내온 인내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 의미였으리라.

봄만큼 인간의 감성을 풍성하게 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은 목소리와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 봄을 노래했다.

이런 봄의 화신(花信)이 20여일이나 일찍 왔다. 덕분에 시야가 머무는 산마다 들마다 울긋불긋 하다. 홀로 단아하게 봄을 맞이하던 목련은 벌써 하얀 옷깃을 여미듯 꽃잎을 떨구고 있다. 따라서 올 것 같지 않던 봄도 어느덧 여름을 향해 성큼 달아난 느낌이다.

예년 같지 않은 계절 탓에 울상인 곳도 생겨났다. 벚꽃 축제를 계획했던 지자체들이다. 이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 꽃망울 터트린 벚나무의 자태는 아름답고 화사하기만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봄이 희망과 부활의 계절임을 증명하고 있다.

봄볕이 따사롭고 연둣빛 새순을 내미는 신록이 싱그럽지만 이를 느낄 겨를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다. 장관 후보자를 검증했다는 청와대 관계자들과 국회 청문회를 끝낸 5개 부처 장관 후보자들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처음 낙마(落馬)의 불명예를 안은 두 명의 후보자는 더욱 그렇고.

중국에서는 금력과 권력만을 위해 벼슬길에 나서는 사람을 빗대 ‘역마’(逆馬)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말을 거꾸로 탄다’는 뜻이다. 도덕적 흠을 숨긴 채 말을 거꾸로 탔다가 굴러떨어졌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다고 낙마를 하지 않고 무사히 권좌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괜찮을까? 선현들은, 권력이란 원래 자기의 것이 아니고 국민한테 빌린 것이다. 그런데도 말에 올라앉아 우쭐대고 으스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4월의 첫날 이번 장관 인사 파동을 보며 다시금 생각나게 만드는 ‘말’이 아닐수 없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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