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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

/김명은

꺾인 나뭇가지에 유리 풍선이 얹혀 있다

이빨에 물어뜯긴 입술로 입을 맞출까

음소를 노랗게 물들이며 태양의 허밍을 청취하고 있다

첫 키스가 마지막까지 숨겼던 어절이 드러나는 시간

다물어버린 입속에서 성조(聲調)가 썩고 썩은 침묵이 쏟아진다

칼날은 시고 달고 쓰다 따뜻한 혀에 얼어붙은 알갱이

침묵을 이겨낸 혀가 출구 없는 악보를 읽는다

방랑하던 음이 혀끝을 처음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 김명은 시집 ‘사이프러스의 긴팔’

 

 

 

 

우리는 언제까지 ‘꺾인 나뭇가지에 얹혀 있는 유리 풍선’처럼 불안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일까. 행복을 가장한 불행에 언제까지 입을 맞추어야 하는 것일까. 태양의 허밍을 듣노라면, 칼날처럼 예리한 첫 키스의 추억은 달콤만 해야 마땅할 것이나, 실은 자몽처럼 시기도 쓰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다물어버린 입 속의 썩은 침묵들. 그러나 우리의 혀마저, 심장마저, 얼음 알갱이처럼 차가워진 것은 아니다. 비록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일지라도 우리는 악보를 읽듯 우리의 삶을 허밍하여야 한다. 방랑하는 음이 방랑이 아니게 될 때까지./김명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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