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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거리는 늦은 밤 점점 드세지는 개 짖는 소리 잠을 깼다. 몸도 무겁고 귀찮기도 해서 그러다 말겠지 하고 돌아눕는데 인적도 끊긴 밤 동네 온 동네 개들이 연달아 짖는 소리에 간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둠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어릴 적 고향을 떠난 친구였다. 예전의 모습은 간 데 없고 머뭇거리며 털어놓는 사정얘기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싸움에 말려들어 뜻밖에 살인을 해서 시체를 숨겨 도망을 왔다고 했다. 그러니 어렵겠지만 아무도 모르게 산에다 묻자는 말을 하는 친구는 금방 쓰러질 듯 보였다.

두 말 않고 친구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불빛에 보이는 친구의 얼굴은 초췌하기가 말이 아니었다. 반찬 없는 밥이나마 따끈한 국에 말아 한 술 뜨고 몸을 녹이도록 했다. 상을 물리고 앞장서서 일어서려는데 친구가 얘기나 하자고 했다.

친구는 살인을 한 적도 없고 가지고 온 것은 시체가 아니라 돼지를 한 마리 잡아 왔다고 했다. 현직에서 물러나 허송세월하며 병든 몸으로 누워있다 보니 그 동안 곁에 있던 사람도 발그림자도 없고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가 여기저기 찾다 어린 시절 친구를 찾아왔다는 얘기였다.

그 친구는 어릴 적 글방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였는데 잘 사는 부모님 덕에 일찌감치 서울에서 공부를 했고 좋은 학교를 나와 출세가도를 달렸다. 주변에는 사람으로 넘쳤다. 그 권세가 천년을 가기라도 할 듯 아쉬움을 모르고 돈을 물 쓰듯 하며 술로 살다보니 건강이 악화됐다.

그동안 가정을 등한히 했던 터에 병들어 누우니 가족들도 본숭만숭 했다. 이혼 전단계인 별거에 들어갔다. 쓸쓸히 누워 있으니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진정한 친구는 좋을 때 보다 어려울 때 찾아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했던 말이 가슴에 박혔다. 매일처럼 어울리던 술친구들은 그림자도 없었고 오히려 슬슬 피하는 눈치였다. 누구누구 찾아오면 송장 치우지 않으려거든 아는 체도 하지 말라는 괴상한 소문이 퍼져갔다.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과 친구가 떠올랐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신중했다. 진정한 친구를 찾고 싶었다. 초라한 행색으로 친구를 찾아갔다. 모두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꽁무니를 뺐다.

이제 하나 남은 친구가 있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도시락 한 번 못 싸온 친구였지만 공부도 열심이고 운동도 열심이었다. 육상대회에 출전하면서도 운동화 한 켤레 살 돈이 없어서 물이 새는 까만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것을 보신 아버지가 대신 사주셨는데 그걸 알고 한 동안 그 친구를 놀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초라한 모습으로 찾아간 친구를 그것도 살인자라고 고백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따뜻한 저녁을 먹이고 함께 장례를 치루겠다고 나서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친구 집 가까운 곳에서 형제처럼 살았다.

친구의 목소리는 봄바람보다 가벼웠다. 엄마를 닮아 고전무용을 하며 예쁘게 키운 딸이 믿음직한 짝을 만나 보금자리를 꾸리게 되었다고 다른 친구들 보기 미안해서 나에게만 연락을 한다는 얘기였다. 평소에 전화 한 통화도 없다 모바일 청첩장에 친절하게 계좌까지 찍어 보낸다고 탓하기도 하지만 딸을 보내며 스산해할 친구에게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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