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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기억과 욕망의 4월

 

양평에서 미술전시회를 한다며 초대장을 보내온 친구의 작품을 보러 몇몇 친구가 함께 나섰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줄기와 산자락에 피어오르는 봄의 색채를 즐기면서도 나름 복잡한 표정들이다. 오랜만에 도심을 벗어나니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마침내 시를 쓰는 친구가 행복했던 유년을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자신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실은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과 성원 덕분이라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벽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딸을 적극 지지한 아버지 덕분에 산골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작가로서의 소중한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시골에 오면 다시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고 싶어진다며 들판을 향하는 시선에 아련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묻어난다.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또 다른 친구가 대뜸 ‘키다리 아저씨’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그 친구는, 익명의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을 위로하던 주디가 결국 작가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유복한 친구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지만, 주디 자신은 고아임에도 매 순간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고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더니 또 다른 친구가 “그런데 엘리엇은 왜 4월을 잔인하다고 했지?”라며 돌직구를 던진다. 나는 지금 이 봄에 모두 행복하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주저하듯 다가오던 봄이 산수유와 벚꽃, 홍매, 청매, 생강나무 꽃으로 잠시 술렁이는가 싶더니 4월이다. 매년 4월이 되면 회자되는 시가 있다. 미국 출신 영국 시인인 T. S. 엘리엇의 ‘황무지’ 첫 행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된다. 왜 일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스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이어가게 했으니.(‘황무지’ 부분)



제1부의 제목 ‘죽은 자들의 매장’이 의미하듯 죽음을 통한 삶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종교적으로 볼 때 4월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과 관련되기에 예수의 수난을 환기하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사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 후 황폐한 문명 가운데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죽음 같은 삶’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삶에 대한 각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겨울의 긴 잠으로부터 깨어나도록 재촉하는 봄은 잔인하게 생각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러기에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 한 노교수도 쓸데없이 거창한 의미를 붙일 것 없이 봄이 되면 젊은이들은 모두 산으로 들로 놀러가지만 노인들에게는 봄나들이 가자는 사람 하나 없으니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시니컬하게 말씀하시던 생각이 난다.

시골길을 걸으며 한 친구가 중얼거린다. 우리에게 젊음의 행복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세파를 견뎌오다 보니 ‘죽은 땅’을 헤치고 피어나는 작은 풀꽃 하나에서도 우주의 신비를 볼 수 있게 된 것 아니냐고. 문득 발아래 돌부리를 비집고 피어나는 노란 씬냉이꽃을 들여다보며 기억과 욕망이 뒤섞인 지난 세월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4월이다.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新綠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김달진 ‘씬냉이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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