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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사의 시선]위록지마 유감

 

오래전 어느 단체에서 조사한 자료에 정치인이 가져야할 자격 요건 중에 정직성, 책임성, 통솔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을 봤다.

‘정직은 최상의 정칙이다’라는 격언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직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일례로 공인의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명예를 잃었을 때 사회적으로 극한적인 상황이 주어지는 예를 보더라도 정직함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대중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일컬어 공인이라고 표현한다. 연예인을 비롯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세간의 이목에 민감한 이들 또한 정치인에 버금가는 정직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정직성은 개인의 성정이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참되고 바른 성질을 나타내며 정직성은 개인의 의식수준과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직성은 상식적이고 바른 행동이 수반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정치인과 공인이라 일컬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정직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안타깝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좀처럼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기고 사회적 여론의 표적이 되면 어김없이 갖은 논리를 내세워 자기를 합리화 시키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이 그들의 장기이다.

또 지나고 보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인데도 부덕한 생활 행태나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사과하는 예가 거의 없다. 책임감과 통솔력 또한 정치가의 요건으로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이것들 또한 정직성에 귀착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있었던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구태한 모습을 지켜봤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문회를 통해 전해지는 질문과 동문서답식 태도를 보면 오랜 관행처럼 여겨질 뿐이다.

편법과 위법 그리고 잘못된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하나같이 기억이 없다, 잘모르겠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가족이 그리 한 것이다, 더러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편법인데 왜 문제가 되느냐라는 도덕적 둔감성까지 지니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관습에 따라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을 한다.

이쯤에서 어떤 고사가 생각난다. 위록지마는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 가운데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환관 조고가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2세 황재로 삼았다.

그런 연후에 조고는 경쟁관계에 있던 승상 이사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승상의 자리에 올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던 중 조고가 자기를 반대하는 중신들을 가려내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냈다.

어느 날 사슴을 2세 황제에게 바치며 조고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말(馬)입니다.” 이에 대해 2세 황제가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어찌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하오?”라고 했다. 그러자 조고는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며 이것이 말이냐, 사슴이냐”고 물었다.

조고를 두려워한 상당수 신하들은 말이라고 동조했으며, 잠자코 있는 사람도 있었으나 일부는 사슴이라고 부정했다. 조고는 부정하는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모두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로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비유할 때 이 고사가 인용됐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국민을 상대로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기 위해 말을 사슴이라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태라 여겨진다.

정치인을 비롯 사회적으로 공인이라는 사람들은 국민의 눈과 귀를 두려워 해야 한다. 루터의 “한 가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곱의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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