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한 잔의 물

 

 

 

밤 깊은 선술집에 손님들이 떠들썩했다. 그때 행색이 초라한 노숙자 한 명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들어왔다. 주인은 그가 못 마땅해 눈살을 찌푸렸다. 노숙자가 술집 주인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물 한 잔만 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냉담하게 말했다.

“물 값을 내게.”

노숙자는 난처하여 말했다.

“보다시피 돈 없는 노숙자 올씨다. 그냥 물 한 잔 주십시오.”

“안 돼. 우리 집에선 공짜는 없어.”

그러자 노숙자가 통사정을 했다.

“저는 돈 없는 거지 옳습니다. 한 잔 주십시오.”

“안 돼.”

주인은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이때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노인이 노숙자를 보고 말했다.

“이리 오게나. 내 이 물 잔의 물을 마시고 가게나.”

노숙자는 허리를 굽혀 고마움을 표하고 물 한 잔을 달게 마셨다. 그는 노신사의 앞에 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잘 마시고 갑니다.”

노숙자가 막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주인이 그를 불렀다.

“어딜 가. 물 값은 내고 가야지.”

노숙자가 항변했다.

“아니 저는 저 노인장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고 갑니다.”

“그래도 내야해. 그 물은 우리 집 물이니까.”

“저는 돈이 없는데요.”

“그래도 내야해.”

이 말에 노인장이 말했다.

“보시오, 주인장. 너무 야속하게 굴지 마시오.”

그러자 주인은 노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런 자에게 물 값을 받지 않는 건 선심이 아닙니다. 이 자는 일하지 않고 그저 얻어먹는 거지근성에 젖어 있습니다. 만약 물 값을 받지 않으면 나가서 그 돈으로 술을 사거나 마약을 할 겁니다.”

노인장이 그 말에 답했다.

“그래도 그렇지. 저 사람에게도 당신 같은 한 때는 있었네. 당신처럼 부모님이 있었고 당신 같이 학교를 나와 직장에 나가며 월급도 받았을 것이며 당신처럼 이런 음식점 사장 노릇도 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네.”

그러자 노숙자가 노인의 말을 가로 막았다.

“노인장. 그건 틀린 말씀입니다. 저는 고아로 태어났고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고 직장이라곤 근처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거지였고 왕년에도 저는 거지였으며 지금도 저는 거지 옳습니다. 그러니 이 주인장 말씀이 옳습니다. 물 값은 내겠습니다.”

그는 너절한 주머니에서 물 값을 꺼내어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노인에게 다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그러나 오늘 저녁 노인장께서 주신 그 물맛은 생전 첨 느껴보는 단 맛이었습니다. 저는 저승에 가서도 노인장께서 주신 그 한 잔의 물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하고 절룩거리며 술집을 빠져 나갔다. 그 순간 술집 안은 침묵에 잠겼다. 저마다 느낀 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자리에 당신이 있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