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인간의 본성
[삶의 여백]인간의 본성
  • 경기신문
  • 승인 2019.04.11 19:38
  • 댓글 0
  •   17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대수필가·칼럼니스트
김용대 수필가·칼럼니스트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다. 넓은 열차 칸에 덩그러니 혼자라면 어떠할까. 덜컹거리는 철로의 마찰음이 예전보다 크게 들리고, 지나가는 들과 건물과 나무들이 외로움으로 다가서서 부르르 몸서리치지 않을지. 아니, 반대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오페라 가수처럼 무게를 잡고 노래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느 정치 후보자처럼 허세부리며 큰 소리로 연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가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에.

A. G 가드너는 런던에서 미들랜드로 가는 마지막 열차인 완행열차를 탔다. 출발할 때는 손님들이 찼었지만, 교외 정거장에서 열차가 멈출 때는 하나씩 둘씩 내렸으며, 런던의 외곽을 등 뒤로 돌렸을 때쯤 해서는 혼자였다. 그래서 일종의 자유의 향연으로 창문을 계속 열거나, 반항의 자극 없이 그것을 계속 닫거나 할 수 있고, 찻간 어느 구석도 차지할 수 있는 즐거운 마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모기를 발견하고 그와 쫓고 쫓기는 모습을 마치 사람 대 사람과의 행위처럼 묘사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열차를 탔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담뱃불을 붙여 다시 주저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내가 동료 여행자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다가와서 내 코 위에 앉았다. 나는 그를 코에서 내리갈겼다. (중략) 그는 펄쩍 뛰어서 찻간을 다시 한 번 돌고 돌아와서는 무례하게도 내 손등에 앉았다. “나는 너를 사형에 처한다. 정의는 그것을 원하고, 법정은 사형을 선고한다. 너의 판시 이유는 많다. 너는 부랑아이다. 너는 공해이며, 차표와 식권 없이 여행하고 있다. 이런저런 많은 불미스러운 행동 때문에 너는 이제 죽어야 한다.”-

가드너는 스스로 판사가 돼 모기를 단죄하는 익살을 보인다. 오죽 심심했으면 그리하겠는가 하면서도 그의 기지에 놀란다. 모기는 무례할 정도로 공격을 피하며 오히려 모욕하여 가드너의 자만심이 분개했다. 모기가 내려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접근해서 재빠른 동작으로 후려친다는 고양이 같이 교활한 전법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가드너가 모기를 재판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풍차를 거인이라 여기고 거인들이 둘시네아 아가씨를 납치해간 나쁜 산적이라면서 풍차를 향해 용감히 돌진하지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전투가 끝나버린 돈키호테의 기행과 흡사하지 않은가.

사람은 이상을 꿈꾼다.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는 환상에 젖어 수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행위를 정상인이 아니라고 깎아내릴 수만은 없다. 미물도 인간과 같은 존재라고 여긴다면 세상이 달라지리라.

넓은 기차 칸에서 그것도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라면 외로움이 엄습하여 지난날의 삶이 무수히 스쳐 지나갈 것이다. 내가 혼자였다면 창 너머로 스쳐가는 차가운 별무리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거나, 명절에 천리 길 고향을 찾아가느라 입석으로 탔던 완행열차에서 무리들과 어울려 억샌 사투리로 남 의식 않고 떠들던 예전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으리라. 그러나 가드너는 하찮은 모기를 발견하고 고차원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나는 인간의 도덕적인 존엄성을 재평가할 수 있고, 명예롭게 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사형 선고를 취소하고 내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너를 사형시킬 수 없지만, 너를 집행유예 할 수는 있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한다.-

가드너는 모기를 쫓다가 나중에는 모기가 자신과 같이 찻간을 소유하려고 도전한 사람으로 인격화하고 길동무로 인정한다. 그리고 인간의 우월감을 버리기로 한다. 관대함과 자비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속성이다. 이러한 고귀한 자질을 훈련하는 속에서 자신의 위신을 회복할 수 있음을 깨우친다. 어쩌면 자연과 어우러져 함께 생활하는 이상 세계를 꿈꾸는 잠재된 희망 사항이 아닐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