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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바실리 칸딘스키 작품과 화가의 내면

 

벚꽃이 만발하다. 꽃구경을 즐기기 위해 거리에는 인파들이 모이고,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설레는 마음이 총총 실려 있다. 언젠가 벚꽃들은 슬픔 속에서 고요하면서도 찬연하게 만개를 했었다.

하지만 그사이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아픔과 슬픔이 분노로 바뀌기도 했고, 지나간 세월이 어느덧 치유해놓은 곳들도 있으며, 더는 자극이 되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다져진 부분도 생겼다.

물론 아직도 분노와 혼돈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있고,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봄바람과 함께 살랑거리는 마음도 있다. 벚꽃이 피는 풍경은 매해 그 모습을 바꾼다.

꽃잎이 점점이 흐드러져 있는 모습은 화가의 붓 터치를 연상하게도 한다. 특히 한 그루의 나무가 그 속에 에너지를 축적해 놓았다가 어느 순간 꽃망울을 터뜨리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회화가 선사했던, 그 신선하고 순수한 에너지가 떠오른다.

색채가 인간의 영혼의 깊숙한 곳까지 가 닿아 심연을 요동시키는 운동력이 있다고 믿었던 칸딘스키는 꽃이 만발하듯 색이 만발하는 생기발랄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었다. 그러한 칸딘스키의 색채 표현은 당시에는 매우 참신한 것이어서, 미술사의 흐름이 잠시 그 앞에서 정지해 있다가 크게 점프를 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보다 조금 앞서, 혹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피카소조차 형태의 연구와 분할에 대해 오랫동안 실험을 거쳤고, 그의 선배와 동료들과 함께 그에 관한 생각들을 두루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칸딘스키의 자유분방한 색채 표현과 거침없는 붓 터치는 매우 독창적이어서 그가 누구로부터 어떠한 경향을 받아들였는지 구체적으로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러시아 태생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자연과학, 민족학, 인류학에도 두루 조예가 깊었던 지적인 인물이었다. 서른의 나이에 예술에 이끌려 학자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뮌헨으로 유학을 왔지만, 그의 작품에는 온갖 혹평이 따랐을 뿐이었다.

다행이 그는 후기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독일의 표현주의로부터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고, 지지해주는 교수와 선배들이 없어도 자신의 길을 독창적으로 열어갈 양분을 그것들로부터 얻었다. 매우 지적이었던 그는 자신의 예술적 입장을 정리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책을 냈으며, 그즈음 자신의 생각을 함께 할 동료 화가들과 ‘청기사’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1919년에 발표한 ‘즉흥 19’는 안 그래도 칸딘스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관객들과 비평가들을 매우 당혹시킨 작품이었다.

캔버스의 대부분은 힘이 넘치는 붓 터치로 푸른색이 채색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붉은색, 노란색, 흰색, 녹색 등이 어지럽게 칠해져 있다. 검은색 윤곽선이 사람과 나무로 짐작되는 일정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딱히 이 작품이 어떠한 풍경을 담고 있는지 관객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고, ‘즉흥 19’라는 작품의 제목도 그것에 대한 단서를 전혀 제공해주고 있지 않았다.

이 작품은 회화가 굳이 특정한 대상을 재현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해버린 작품이기도 했다. 그전에도 칸딘스키의 작품에서 형태보다는 서정성을 띤 색이 훨씬 더 많이 강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이처럼 극적으로 형태와 결별한 작품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꽃이 만개하듯 작품이 완성된다는 비유가 칸딘스키에게는 꼭 들어맞는다. 그 역시 작품이란 화가의 내면에서 축적되어 있던 에너지, 수많은 경험과 감성들, 지식들이 터져 나와 표현된 것이라고 여겼다. 칸딘스키에게 예술이란 다분히 내면적인 것, 정신적인 것, 그리고 즉흥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회화에 대한 칸딘스키의 생각은 이후 근대 회화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허나 관객들의 입장으로서는 그가 원망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칸딘스키 이래로 수많은 관객들은 작품을 보고도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들이 만개하였으니 칸딘스키의 작품을 감상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칸딘스키는 현재를 살고 있는 화가는 과거가 아닌 그 시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감성을 깨우는 존재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꽃나무야 말로 가장 훌륭한 화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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