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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明淸교체기 국가흥망의 열쇠

 

17세기 중국 명청교체기에 어떻게 100만명에 불과한 만주족(여진족)이 백배가 넘는 1억명의 중원을 정복하고 지배했는지 미스테리다. 물론 다양한 분석이 제시된 바 있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명으로 지도자의 식견과 포용력, 그리고 실용주의를 들 수 있겠다.

여진이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있던 16세기 말 건주여진의 추장이던 누르하치(청태조)가 여진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해 통일하고 후금을 세웠다(1616년). 그 후 홍타이지(청태종)에 의해 청나라가 세워지고(1636), 강건성세(康乾盛世)라 불리는 강희제와 건륭제까지의 138년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맏아들이 아니었다. 홍타이지는 8남, 순치제는 9남, 강희제는 3남, 옹정제는 4남, 건륭제는 4남이었다. 순치제의 숙부로 실질적으로 명을 멸망시킨 도르곤은 누루하치의 14남이었다. 홍타이지가 청나라 황제에 오를 때는 친형인 다이산까지 나서서 홍타이지에게 황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장남이 황위를 계승하는 명에 비하여 실력이 있는 자에게 황제자리를 맡김으로써 국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홍타이지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명의 장점을 배워 나라를 정비했다. 명나라에 의해 고비사막 이북으로 밀려났던 몽골족을 흡수하고, 요동지방의 한족(漢族)을 회유하여 백성으로 동화시키고, 끝까지 명나라 편에 섰던 조선을 제압하여(병자호란) 뒤를 막은 후 서서히 중원정복에 나섰다.



지도자의 식견과 포용력이 국가융성의 동력

명청교체기에 망해가던 명나라 못지않게 한심한 것은 조선이었다. 명청교체라는 국제정세를 간파하고 균형외교를 폈던 광해군은 서인에 의해 밀려나고, 인조가 즉위했다. 청나라를 막아낼 힘이 전혀 없으면서 재조지은(再造之恩; 임진왜란 때 명이 도와주어 사직을 보존한 일에 대한 은혜)에 얽매여 청을 오랑캐라 하고 무시하기만 했다. 결국 민족사에 커다란 치욕인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비하여 청나라는 작은 유목민 부족에서 출발했지만 명나라를 압도할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명나라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다. 커가는 과정에서 내부의 권력다툼과 갈등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청나라 초기 황제들은 외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여 외부로 눈을 돌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유목민이라 농업 생산은 약하지만 전쟁과 약탈에 장점이 있었다. 그 장점을 살려 명의 변방을 쳐서 물자를 약탈하는 한편 상업을 장려하고 축적된 부로 화포를 도입하는 등 국력증진에 힘을 썼다. 그리고 국제적인 포용력을 발휘해 여진-몽골-한족 연합국의 형태를 구성하여 남아 있는 명을 몰아붙였다. 결국 명나라는 마지막 황제 숭정제 때 이자성의 난으로 망했고 청이 이를 토벌하면서 명청왕조 교체를 완성하였다.



내부의 상대방을 포용하고 외부로는 단합된 힘을 보여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를 앞에 두고 남한산성에 갇힌 상태에서도 왕과 신하들은 서로 파벌싸움만 했다. 그러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임진왜란 이후의 신식무기와 군대, 그리고 지리적 이점은 아무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현재도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다툼 속에서 북한은 핵무기로 모험을 걸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책임전가에 급급하다. 박영선·김연철 장관에 이어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 청문회를 보면 현 정부의 인력풀이 너무나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느낌이 든다. 또 남북-북미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나 다른 여야의 의견이 밖으로 표출된다. 지도자(집권세력)의 포용력은 집단의 역량을 극대화시키고, 분열과 편가르기는 경쟁력을 반감시킨다.

반대편의 목소리는 자신의 약점을 알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우리 정치권과 국민 모두 너무 편협하기만 하다. 12세기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 김함보라는 설이 유력하며, 청나라 황족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만주어로는 황금씨족이라는 의미지만 한자로 풀이하면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우리 민족과 혈연으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넓은 땅에 살다보니 마음이 넓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중원을 정복한다는 생각은커녕 현실파악도 못하면서 그저 눈치 보기에 급급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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