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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센 강의 시테 섬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이 서있다. ‘노트르담’이다. ‘우리의’ 라는 뜻 ‘Notre’와 ‘귀부인’ 이라는 ‘Dame’이란 두 단어가 합쳐진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테섬은 파리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파리’란 이름도 시테의 켈트족(族) 원주민 ‘파리지(Parisii)’에서 따왔다. 프랑스 왕국이 가톨릭을 국교로 채택한 뒤 로마의 식민지배 때 세워진 시테의 주피터 신전은 무너졌고 1163년 그 자리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워 졌다.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서다.

1320년경에 공사는 끝났으나 건설 도중과 완성 후에도 대성당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잔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1455년)이 열렸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는 비참한 수난을 겪었다. 3개의 성당 출입문 위 일렬로 늘어선 28개의 성경 속 유대 왕 입상(立像)과 종(鐘)이 모조리 끌어내려져 산산조각이 났을 정도다. 그 후 나폴레옹 1세가 미사를 부활시키고 자신의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하면서 지위를 되찾았다.

노트르담이 세인의 관심을 다시 받은 것은 1831년 출간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일명 ‘노틀담의 꼽추’) 때문이다. 노트르담을 무대로 집시 여인과 꼽추 종지기 가 펼친 슬프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의 가치를 일깨워서다. 그후 노트르담은 1844∼1870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뤄졌다. 그리고 약 800년 동안의 얼룩진 역사를 씻어 내는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제 모습이 되살아났다.

중세의 종교 예술이 집결된 ‘고딕의 보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아르슈베슈 다리를 건넌 센 강 왼쪽 기슭에서 보는 남쪽과 뒤쪽의 경관은 파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며 역사적 관광명소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15일 불행하게도 화마(火魔)가 인류의 유산 노트르담을 삼켜 버렸다고 한다. 참사를 보는 전 세계인들의 탄식이 들리는 듯 하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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