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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들으며 정일근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인은 지금 고래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옛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의 동의어이므로, 서러운 사랑, 이제 그만 저 바다에 놓아주려 한다.이런 때에는 하늘에서 펑펑 함박눈이라도 은혜롭게 쏟아질 것 같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며 펑펑 쏟아지는 흰 눈을 맞으며, 백석이란 사내와 함께, 오지 않는 나타샤를 기다리며 소주라고 마시고 싶다. 오지 않는 옛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쓸쓸하면서도 행복한 일이다.기차는 8시에 떠나고, 기다리는 것은 끝내 오지 않는다. 고래도, 연인도, 나타샤도, 간절한 것은 도무지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우리들은 늙어간다. 생의 끝까지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들의 부조리한 운명이다. 어차피 세상은 떠난 자들과 기다리는 자들의 연합이 아니던가. 떠나는 자와 기다리는 자 중에 누가 더 슬프고 누가 더 오래 아플까?/김인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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