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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해묵은 추억

 

김치냉장고에 보관된 반 건시 감을 꺼낸다. 적당히 말라 걷은 찰지고 속은 부드러운 건시를 먹는다. 조금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손이 간다. 지난 가을 식품건조기에 말려둔 것이다. 지난여름 가뭄 때문이지 작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숫자가 적은만큼 감이 제법 실하게 익었다.

제상에 올린 요량으로 잘 생기고 커다란 감은 곶감을 켜 널고 좀 나은 것은 골라 홍시를 앉혔다. 흠집이 나거나 따다가 깨어진 것 등 상품가치가 적은 것은 껍질을 벗기고 씨를 발라 건조기에 말렸다. 신기한 것은 떫은 감도 건조기에 말리면 떫은 기가 사라진다.

감을 먹을 때면 스승님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시켰다. 학습지를 풀고 틀린 문제는 이해할 때까지 학습을 시켰다.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공부를 했다. 교실 안 화목난로에는 60여개의 도시락이 쌓여졌다. 아래쪽에 있는 도시락은 따끈따끈하지만 위에 얹힌 양은 도시락은 그저 냉기를 면할 뿐이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밖엔 눈보라가 몰아치고 발목까지 눈이 내렸다. 그날따라 밥이 차가웠다. 저녁도시락을 먹고 수업을 시작했는데 온몸이 춥고 떨리면서 아팠다. 꾹 참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어디 아프냐며 손과 이마를 만져보고는 숙직실로 데리고 가셨다. 숙직실의 아랫목은 따뜻했다.

급체한 것 같으니 누워있으라며 나가시더니 한참 후 약 봉지를 들고 오셨다. 학교는 시골이라 약국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반 학생들은 자습시키고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약국까지 달려가 약을 사 오신 것이다. 약을 먹고 잠깐 잠든 사이 어머니가 데리러 오셨다. 다음날은 결석을 했고 이틀 째 되던 날 어머니는 홍시 한 바구니와 약값은 내게 들려 보내셨다.

홍시는 고맙게 받을 것이니 약값은 도로 어머니께 갖다 드리라며 이 홍시면 약값 몇 곱절은 되니 감사히 먹겠다는 말씀도 꼭 전하라고 했다. 선생님의 자상한 미소와 손길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적이었는지 선생님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까지 선생님은 엄하고 무서운 사람인지 알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칠판 위에 손을 얹게 하고 시험문제 틀린 개수만큼 때리곤 했다. 손등이 얼마나 아픈지 맞을 때마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줄 알았었다. 준비물 못 챙겼다고, 우향우, 좌향좌 할 때 방향 틀린다고 매 맞고 아무튼 선생님들의 체벌이 문제가 되지 않던 때였다.

육성회비 못 냈다고 맞고 쫓겨 오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교실에 몽둥이는 늘 있었다. 그렇게 무서운 분 인줄 만 알았던 선생님이 자상한 아버지처럼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그때부터 선생님을 좋아했고 야단을 맞을 때도 선생님의 진짜 마음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분이라는 걸 알기에 속상하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졸업식 날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어서 눈이 퉁퉁 붇도록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교육현장의 많은 변화로 인해 교육방식과 문화 등이 많이 달라졌고 교사도 학생을 지도함에 있어 많은 고충과 애로사항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사는 사명감으로 이 나라의 기둥이 될 학생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고 학생은 학생답게 스승에 대한 존경심으로 배움에 최선을 다한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사제지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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