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이주연칼럼]고슴도치 딜레마

 

 

 

 

 

몸에 가시가 대략 5천개 정도 있다고 하는 고슴도치를 보면 가슴이 아리다. 대체 얘네는 가시가 많아서 어떻게 사랑을 하고 또 어떻게 슬픔을 나누는 걸까?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겨울이 가까워오면 이들도 생존을 위해 서로의 온기를 나누려 할텐데 어찌할것인가.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서로 몸을 기대 온기를 나누려 가까워지면 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그렇다고 떨어지면 추위를 막을 수 없게 되는 딜레마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는 이 고슴도치 딜레마의 핵심은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떨어질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 어쩌면 두 고통사이에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사랑을 나누기도, 온기를 나누기도, 그리고 슬플 땐 함께 부둥켜 안으며 슬퍼할 수 있도록 몸에 가시 같은 것은 없다. 참 다행이다. 그런데 부모를 살해하고, 친구를 폭행하며 화난다고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 사고를 연일 접할 때면 우리 몸에 눈에 보이지 않은 가시들이 가득 찬 것만 같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철학적 논의에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심리학에서 성격, 발달, 관계의 세 측면에서 문제 상황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친밀함을 원하면서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상태로 타인에게 다가가기 힘든 두려움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심리적 발달과정에서도 고슴도치 딜레마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에릭슨의 심리 발단단계 맨 처음은 ‘신뢰 대 불신 단계’라고 명명한다. 에릭슨은 친밀한 태도로 일관된 양육을 통해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을 때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또 주변 환경과 양육자에 대해 신뢰감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아이는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긍정적, 희망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신 있게 발달을 해 나가게 된다고 설명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불신감이 생기며 심리적 발달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애착이론은 에릭슨의 1단계 심리 발달을 기초로 관계에 있어서 안전기지라 불리는 신뢰하는 관계가 있으면 삶의 문제가 생겨도 이 안전기지에서 가졌던 여러 심리적 안정이 불안감을 많이 감소시키는데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과도한 친밀감을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의존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거나 심지어 가까운 관계를 부정하고 피하려고도 한다.

사회적 관계 측면에서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사회적 욕구가 존재한다. 사람은 사회적으로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역할을 맡고 또 그것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으로부터 거절이나 비난을 받아 부정적 정서가 오래 지속되면 높은 공격성이나 외부에 대한 정서적 무감각이 생기며 때로는 그 심리적 피로감으로 인해 자신을 고립시키며 스스로를 학대하는 경향도 보인다.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경향을 가지거나 불안한 내면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문제에 대한 갈등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꺼리며 자발적으로 홀로 되려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이들은 때대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이며 성격도 그렇게 고정화되어간다.

갈수록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싫어서 혼자 고립되려는 새로운 고슴도치들이 늘어나고 있다. 엄마와 딸이 집에서도 휴대전화 문자로 대화하는 지금, 그리고 서로 바빠서 1년이 다되도록 얼굴을 볼 수도 없는 이 때에 고슴도치 딜레마는 우리에게 내가 아닌 타자를 얼마나 열망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소중하게 관계를 가꾸어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5월, 사랑의 달이다. ‘인생을 돌아보며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순간뿐이다’라고 했던 헨리 드러먼드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