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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백년의 약속

 

 

 

소설가 이외수(73)씨가 결혼 44년 만에 부인 전모씨와 졸혼(卒婚)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시선을 모았던 맨발의 이외수씨와 미스강원 출신의 미모로 화제를 부렸던 두 사람의 사랑은 이것으로 막을 내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전 같으면 다 늦은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했지만 지금은 세태에 면역이 되었는지 이런 일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다.

졸혼이란 개념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등장했다. 스기야마 부부는 걸어서 25분가량 떨어진 아파트에 따로 살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두 번 만나 식사를 하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스기야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기에,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기 싫은, 자아성취욕구가 강한 부부에게 어울리는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졸혼이란 스기야마 부부처럼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부 관계를 정리 하고, 서로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형태를 의미한다. 자녀의 결혼 후 부부가 따로 각자의 삶을 즐기지만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점에서 별거와도 구분된다. 이 개념은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심리적 안정감이 황혼이혼이 아닌 졸혼을 택하는 이유로 꼽힌다. 가족이 해체되지 않고 존속된 상태에서 부부만 분리되니 사실상 같이 살지 않는 것 외에 달라진 게 없다. 사회 내에서 아직도 황혼이혼에 대한 시선이 따가워 대안을 찾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외수씨 부부도 아내 전씨 측에서는 이혼을 원했지만 이외수씨가 건강이 좋지 않아 졸혼으로 합의를 했다는 후문이다.

졸혼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결혼의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기보다 임시방편으로 졸혼을 택할 수 있다. 섣부른 합의로 남도, 부부도 아닌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불륜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난제로 존재한다. 상대방의 사생활에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합의지만 부부 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합의는 아니다.

졸혼이 일본에서 건너 온 풍속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나이가 들어 서로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해혼(解婚)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혼인을 천합(天合)이라 여겨 천지합일(天地合一) 즉, 하늘과 땅의 결합처럼 성스러운 것이 혼인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해혼이란 말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37세에 아내에게 해혼식(解婚式)을 제안 했고, 아내는 많은 고민을 끝에 해혼에 동의 했다. 해혼을 성사시킨 후에야 간디는 고행의 길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도 함석헌선생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선생은 51세에 해혼(解婚)을 선언했다. 그 후로 부인의 생활에 일체 간섭하지 않고 오누이처럼 오순도순 지내며 91세까지 재미있게 사시다 떠나셨다.

혼인이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것이라면, 해혼은 혼인 관계를 풀어주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해혼은 부부가 불화로 갈라서는 이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졸혼이든 해혼이든 백년해로의 아름다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별 다르지 않다.

이제 결혼을 일컬어 백년가약이라 부르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는 이유로 하늘이 맺은 인연이라도 사람이 푸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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