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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홍신선

지나가거라, 나는 여기 아프지 않게 주저앉아 남으려 하느니

다만 늙고 병들었을 뿐이니

지나가거라 남은 시간들이여

퇴역한 무용수처럼 한 벌씩 목숨 벗어던지며 자진하려니

아직도 손으로 더듬더듬 짚어가면 삭이지 못한 살피죽 밑 멍울선 죄(罪)들 만져지느니

지나가거라

언제 나를 던져 피투성이로 너인들 껴안고 뒹굴었느냐 폭발한 적 있느냐

안전선 뒤에 남 먼저 뒷걸음질로 물러서지 않았느냐*

그렇다 잘 가거라

살아서 더는 만날 수 없는 마음의 덧없음에 살 떨릴 뿐

오, 말 탄 자

그대는

* 고 임영조의 시 중에서

 

 

홍신선 시인의 ‘마음 經’시편들이 수동적 내면 응시라면, 시 ‘참회록’은 절정에 도달한 능동적·내면 응시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이게 정말 나일까? 치욕의 정점에서 수직에 갱도를 파들어가는 곡괭이. 자신이 믿고 실천하며 기뻐했던 모든 것과 결별을 요구하는 질문들. 뼈아픈 질문은 ‘지나가거라’ 미래의 시간에게 엄중한 명령으로 전환된다. 지금 나는 ‘퇴역한 무용수처럼 한 벌씩 목숨 벗어던지며 자진하려니’. ‘지나가거라’. 미래의 나여. 늘 ‘안전선 뒤에 남 먼저 뒷걸음질로 물러서’던, 한번도 안전선 앞으로 ‘투척’하지 못했던 나를, ‘지나가거라’. 시인은 자아를 타자화하며 절정을 돌파한다. 나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수록 고통에 휩싸이고, 나는 결국 상처를 입는다. 어쩌면 ‘살아서는 더는 볼 수 없는’ 이별을, 내가 나에게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 ‘이별’을 통해 세상과 좀 더 멀어지고 고독 속에서 새로워진 나로 태어나기를 열망하기에, 격렬히 ‘그렇다 잘가라’. 나는 나를 보내는 것이다. 주체는 나에게 더욱 들어가, 거기서만 가능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문득 미래와의 결연을 선언하는 곳. 텅 빈 뼛속 같은 곳,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그 곳, 나는 누구인가. 정말 이게 나야(!). 자신의 껍질을 벗어던지는 상처들 고통들. 하지만 이러한 의문들…. 얼마나 매력적인 질문들인가./박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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