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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부처와 빚쟁이

 

사흘간의 연휴를 지내고 어버이 날이다. 너나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도 하고 선물도 사 주고 떨어져 사는 부모님 찾아뵙고 작으나마 용돈도 드리고 모처럼 맛있는 음식도 드시게 하며 지낸다.

손이 부족한 농사일도 거들며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내며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기쁨으로 채워드리려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맘때 제일 바쁜 집이 모종 파는 가게와 꽃집인 것 같다.

가게가 한가한 틈에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가게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열린다. 웬 젊은 남자가 한 발을 들여놓고 조화로 된 카네이션을 한 송이 불쑥 내민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내게 자기 할머니 꽃 사면서 여기 할머니도 생각나서 한 송이 사 왔다고 한다. 얼결에 꽃을 받아들고 자세히 보니 아는 얼굴이다.

일찍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기초생활 수급자로 사는 어려운 형편에 부족한 것도 많았고 포기해야 할 것은 더 많았다. 그러나 가난보다 그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조손 가정이 갖는 극복하기 어려운 세대 차이와 어린 동생이 말썽을 피울 때였다.

어느 날엔 놀리는 친구를 때려서 그 친구 부모님이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철모르는 동생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찾아오면 두 살 위인 형이 무조건 혼이 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신문 배달도 하고 할아버지 심부름도 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다 곧바로 군에 지원해서 운전병이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대장님 차를 운전하게 되어 아주 잘 되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셨다.

제대를 얼마 남겨두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그 때 아버지도 없는 장례식에 손자가 상주 노릇을 하며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때도 오직 동생의 옷매무새도 고쳐주고 문상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제법 의젓한 상주 노릇을 하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웠다.

사회에 나가서도 성실하게 일을 해서 국내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해서 제법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예쁜 신부와 결혼도 하고 첫 딸을 낳아 혼자 계신 할머니께 자주 영상통화를 하며 증손녀 재롱을 보여드린다.

할머니에게도 아들도 있고 딸도 여럿이 있다. 가끔 할머니께서는 돈도 없는 손자가 용돈이라도 넣었다며 통장 찍어보라는 전화라며 할머니는 흉도 아닌 흉을 보신다. 자식들은 아직도 어머니를 은행으로 아는지 전화만 하면 돈 달라는 소리뿐이고 자식들 돈 구경 한 번 못하셨다고 덧붙이신다.

자식을 기를 때 대가를 바라고 기르는 것은 아니지만 늙으면 자식 돈이 그립다고 한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몇 해 전부터 어버이날 자녀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현금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고생하며 기른 손자가 그 빚을 갚아주고 있으니 할머니는 자식농사는 잘 못 지으셨어도 손자 농사를 잘 지으신 셈이다.

부모의 가슴엔 부처가 앉아있고 자식의 마음엔 앙칼을 품고 있다고 한다. 지나고 드는 생각이지만 부모님 계시는 동안에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달아드리는 게 빚 갚는 길이다.

어떤 부처가 빚 독촉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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