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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오래된 건물 행궁재 모란꽃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김영랑 시인의 시처럼 40년된 낡은 건물을 수리해 행궁재를 마련하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마당에 나의 모란을 심고 싶다는 열망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 모란에 기원을 담아 그리기 시작할 때 오월 한철 잠깐만 피는 모란을 찾아 서울로, 전남 강진으로 다녔다. 도시 한가운데서 마음의 휴식을 주던 성북동 길상사의 모란은 다양한 모습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시험 보고 있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마음에 담았다.

한번은 영랑의 생가 옆에 있는 전남 강진의 세계 모란공원까지 갔는데 바로 며칠전에 다떨어져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며칠전에는 운현궁에서 수없이 많은 모란을 발견하곤 한참을 머물렀다.

모란을 그려 7년만에 ‘화양연화’라는 제목으로 행궁재에서 개인전을 발표했을 때 제일 기뻐했던 사람은 친정어머니다. 친정집 작은 화단에 넝쿨 장미 아래 있던 그 큰꽃이 모란이었슴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 그때는 왜 몰랐을까.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고, 젊기 때문에 자신의 열정에 함몰돼 주변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6명의 자식을 돌보면서도 틈틈이 키운 엄마의 꽃밭은 언제나 아름다웠다는 기억을 요즘에서야 한다. 얼마나 정성을 기우리며 삶을 위로를 받았을까.

몇 년전 학교를 그만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양재동 꽃시장에 딸 연주와 함께 가서 모란 묘목을 4그루을 사와서 집 베란다 화분에 심었다. 겨우내 정성 드려 돌보았더니 한그루는 죽고 꽃 한송이를 피워 냈다. 그후 행궁재 큰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꽃을 못 피우고 해를 넘겼다. 그 다음해 간신히 한송이 피워서 그래도 행복했다. 행궁재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가장 걱정 되었던 건 모란이었다. 그래도 가끔씩은 보기만 하면 잘 크라고 속삭이곤 했다.

긴 겨울이 지나고 행궁재를 다시 보수를 했다. 그리고 가장 양지 바른 곳에 모란을 옮겨 놓았다. 처음으로 3그루 모두 아름다운 꽃송이를 순차적으로 터트렸다. 생각 같아서는 내내 모란옆에 있고 싶었다.

어느날 물주기 위해 모란옆에 있는데 갑자기 툭하고 꽃잎들이 떨어졌다. 비로서 시인의 표현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도 이해가 되었다. 나처럼 내딸도 어느날 엄마의 모란을 기억하겠지.

말은 안해도 언젠가 엄마처럼 모란을 키우기 시작하며 인생을 알아 가겠지. 너무 늦지 말았으면. 하늘 고운 햇살속 연두빛 나뭇잎이 보이는 행궁재에서 많은 위로를 받기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속에 있는 훈풍을 마음속에 담아 두기를. 천천히 쉬며서 가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염원한다.

곧 있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국제섬유아트페어에 외국작가 13명, 한국작가 15명이 개인전으로 경연이 시작된다. 세계적인 작가와 큐레이터도 초청돼 한달간 한국에 머물며 작가들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행궁재에도 왔다 갔다. 한국의 색을 알고 싶어 해서 한국전통염색 워크샵도 행궁재에서 진행한다. 무엇보다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국의 5월에 화성행궁이 있는 행궁재에서 한국전통염색들을 보여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세계적인 염색작가 에린과 미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퀄터 페티가 참석한다. 낡고 오랜된 건물이지만 새롭게 고치고 또 고쳐서 살아 가는 것의 중요성을 알아차리는 덴마크 출신 미국 평론가 라셀의 감성과 지성에 감동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속깊음이 전해 진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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