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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저녁이 되지 못한 것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비 오는 저녁. 누군가 와서 도시에 어둠을 풀어놓는다. 날이 궂으면 더 일찍 서둘러 소리도 없이 구석구석 시나브로 스며든다. 골목의 담 밑으로, 가로수 발등으로, 건물의 틈새 귀퉁이 깨진 화분에도. 이제 땅거미가 거리로 출근을 하면 사람들은 일터에서 퇴근을 한다.

밥과 술과 커피를 파는 업소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난감한 얼굴 뒤로 상점의 불빛이 환하다. 거리는 빗소리보다 더 가쁜 발걸음 소리가 보도블록을 밟는다. 어딘가로 향하는 빠른 걸음들. 상점으로 식당으로 정거장으로. 저녁의 풍경 밖으로 우산들이 바쁘게 흩어진다.

언젠가 벨기에의 작은 도시에서 맞았던 저녁이 생각난다. 안트워프였던가. 크리스마스를 얼마 지나지 않은 계절이었는데 저녁 여섯시가 되자 거리의 불빛들이 꺼지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낮엔 관광객으로 활기를 띠던 마을이 저녁이면 모두들 집으로 가고 텅 비었다.

유럽의 다른 마을들도 대체로 비슷했다. 해가 지면 집에서 식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는 것이 그 곳 사람들의 휴식이었다. 작은 동네라도 밤이면 더욱 시끌벅적하고 화려하게 변하는 한국의 저녁과 대조적이었다.

퍼즐을 맞추듯 아파트도 하나 둘 불이 켜진다. 불 켜진 집의 불빛이 불 꺼진 집의 어둠을 더 깊어 보이게 한다. 그 문 앞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저녁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까치발을 하고 서성이는 것 같다.

집으로 가지 못한 발걸음은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을까. 학원으로, 음식점으로, 강의실로. 혹은 지하철 계단, 대합실 구석진 자리로 가고 있을까? 뭍에 닿지 못하고 섬으로만 떠도는 배처럼.

목표라든가 희망이라든가 혹은 친목을 위하여 귀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을 닮은 눈빛이, 따뜻한 국과 밥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지 못한다. 틀어진 넥타이를 풀고 양말을 벗은 채 거실 바닥을 딛는 저녁을 누리지 못한다. 소파와 티브이 사이에 아무렇게나 다리를 올려놓고 반쯤 눕거나 앉아서 오늘 있었던 얘기를 조였던 허리 벨트를 풀듯 느슨하게 지껄이는 그런 저녁을 놓친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중요한 줄 모르는 부모나 자녀, 혹은 배우자의 존재처럼.

그러다 나이가 든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겠지. 그 많은 저녁을 부재중으로 채워버린 날들에 대하여.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돌아갈 집이 없는 지친 발걸음들. 집이 있어도 맘 편히 들어가지 못하는 사정들. 이러저러한 약속으로 거리에서 저녁을 탕진하는 젊음들. 저녁을 잃은 세대. 저녁을 저당 잡힌 직장인들. 저녁을 모르는 학생들. 그들이 집에 들어가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그런 저녁을 소망한다.

‘저물녁’이라는 말. 저문 것도 아닌, 환한 대낮도 아닌 그 어스름한 말은 저물어서 어렴풋하고 무렵이라서 모호하고 불안하다. 그 저녁의 지점에 이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어디에도 낄 수 없어서 서럽고 쓸쓸해졌다. 주변이나 언저리를 배회하던 유년의 버릇처럼 슬퍼지는 저녁이라는 말. 그 말을 되씹으면 차마 집으로 가지 못했던 어둑어둑한 저녁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면 나는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 저녁상을 차리고 싶어진다. 비 오는 어스름. 집으로 가지 못했던 유년의 나를 부르고, 집으로 가지 못한 모든 저녁을 불러다 앉혀놓고 된장찌개에 고등어를 노릇하게 구워 숟가락을 쥐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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