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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다시보기]‘정치천재’ 링컨의 과업완수

 

링컨은 국가통합과 노예해방이라는 숭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이 가진 모든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그는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해 과업을 완수한 냉철한 정치가였다. 그는 숫한 실패와 고난 등 험난한 삶의 여정을 통해 갈고 닦은 역량을 한 톨의 낭비 없이 위대한 목표에 정확하게 조준했다. 링컨은 ‘가혹한’ 과업추진자였다.

링컨은 천성적으로 신중하고 따뜻하고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연방 재통합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단호했다. 그는 장관들에게 충분한 재량권을 주었지만, 필요할 때는 언제든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음을 인지시켰다. 의회에도 경제 분야에 대한 정책입안을 할 수 있는 권한은 부여했으나, 노예해방이나 재건계획, 군사정책 같은 굵직한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야당 의원들은 그를 ‘독재자’라고 공격했다.

애초에 링컨에겐 연방보존이 최우선이었고, 그 다음이 노예해방이었다. 따라서 그는 취임초기만 해도 노예반대론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노예주이면서 연방에 머물러 있는 이른바 접경주 출신을 많이 발탁해 요직에 앉히는 등 접경주 관리에 주력했다. 뿐만 아니라 노예해방선언의 적기를 예의주시했다. 너무 일찍 했다가는 접경주들이 연방을 탈퇴해 남부 연합에 합류할 경우 연방은 붕괴될 위험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링컨은 때가 왔다고 판단되자 과감하게 목표를 수정했다. 1862년 전반기 평화 시에 인정한 노예제도 보장 원칙을 번복하고, 남부의 노예해방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7월 22일 전 내각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작성한 선언문초안을 낭독하자 내각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뒤집혔다. 전쟁이 유리해 지던 그 해 9월 ‘1863년 1월 1일을 기해 반란 주에 노예로 있는 모든 사람은 자유의 몸이 될 것을 선언’하는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한다.

링컨은 63년 새해 첫날 노예해방 선언문에 서명하고, 나아가 흑인의 군 입대 허용과 함께 전투 보조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노예해방 선언문은 전쟁의 핵심목표가 노예해방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군부와 정계에 큰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력을 가지고 여론과 정확한 시기를 저울질하며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전쟁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었다.

그는 흑인 노예해방을 헌법조항으로 보장하기 위해 또 다시 어려운 작업에 들어간다. 노예해방을 담은 수정헌법 제 13조는 1864년 4월 상원을 무난히 통과했으나, 하원통과에 실패했다. 65년 1월 하원통과를 위해 그는 미국대통령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여당의원 전원이 찬성한다 해도 20표가 모자랐다. 선거에 패배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야당의원들이 공작 대상이었다.

링컨은 로비꾼들을 활용했는데, 뇌물과 관직 입도선매 등 부패한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록들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반대파의 집요한 공작으로 진척이 잘 안 되자 링컨은 직접 나섰다. 의원들을 집무실로 불러 맨투맨 설득하고, 급진파 스티븐스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투표 이틀을 남겨두고 두 표가 모자란 상황에서 자신 없어 하는 참모들을 행해 ‘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미합중국 대통령’이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표를 확보하라고 다그쳤다.

결국 수정헌법 제 13조는 두 표차로 하원을 통과한다.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조치가 미국에서 최고로 순수한 남자의 지원과 사주 아래 부패에 의해 통과되었다”는 스티븐스 의원의 말은 이 사안과 관련한 링컨의 역할을 함축한다. 이것이 냉철한 정치천재이며. 가혹한 과업추진자 링컨의 또 다른 모습이다.

급진파들은 노예제도 폐지와 더불어 흑인에 대한 정치권 보장을 주장했다. 그러나 링컨은 점진적이고 포괄적인 개혁을 주장하며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 폭력이나 급진적인 방법은 위험천만한 것으로 보았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링컨은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아무리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그는 단호한 자세, 분명한 비전, 예리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현명하게 난국을 헤져나갔다. 역사적으로 링컨의 정부만큼 정치권력을 전면적으로 활용한 정부는 결코 없었다. 이는 링컨이 국민적 결집력을 강화하여 유지할 수 있는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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