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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동칼럼]한·중적십자교류 29년, 뜻이 깊다

 

 

 

 

 

여행은 설렘이다. 아니 여운(餘韻)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29년간 결연을 맺어온 한·중 간의 적십자교류에 나섰다. 경기적십자 회장을 맡고 4년만의 나들이다. 6명으로 방문단을 꾸려 선양(沈陽)홍십자회를 지난 4월13일 찾았다. 공항에서 비서장의 영접을 받고 숙소로 가면서 4년간의 선양 도심의 발전상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듯 다양한 모습의 건물들이 앞 다퉈 내 시야에 다가왔다. 랴오닝성의 성도(省都)인 ‘예전의 선양이 아니다’ 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선양 홍십자회 수석부회장이 주최한 만찬은 떠나기 전의 설렘과 5일간 펼쳐질 일정의 기대감 속에 정감이 넘쳐흘렀다. 어느 새 동화되는 순간들이었다.

이튿날 선양시홍십자회를 방문, 양측 대표단이 마주 앉아 공식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1991년부터 양국의 직원, 청소년적십자단원, 봉사원의 정기교류가 이뤄졌다. 인도주의 정신을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사업경험을 교류해왔다. 서로 간의 장점을 배우고, 재난구호시스템을 선진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선양시 혈액센터를 방문해 잘 갖춰진 현대시설을 둘러봤다. 해마다 헌혈율이 16%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부러웠다. 세계표준헌혈율이 10%인데 이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우리나라는 5%다.

3일째, 우리는 이른 아침 선양을 출발, 새로 놓은 고속철을 타고 다롄(大連)으로 향했다. 2시간여 달려온 고속철은 우리나라 KTX와 비슷했다. 진동도 별로 없고 쾌적하고 열차 안도 조용했다. 다롄홍십자회가 운영하는 구호훈련센터를 방문했다. 빌딩 5층에 마련된 구호훈련센터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실연(實演)할 수 있게 잘 꾸며져 있다. 각종 재난에 대비한 훈련을 통해 몸에 스스로 익히게 하는 과정을 이곳에서 습득한다. 지진, 화재, 교통안전, 심폐소생술 훈련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다롄시는 랴오둥 반도 끝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싱하이(星海)광장에서 황해를 향해 색다른 조각물이 눈에 띈다. 다롄시 100주년 기념으로 1천명의 시민, 노동자. 어린이들의 발자국을 부조(浮彫)한 조형물이, 그 앞에 역사책이 펼쳐진 사이를 넘어 바닷가를 향해 뻗어가는 인상적인 조각이다. 공공미술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밤늦게 만두박물관에 들렀다. 세계 각국의 만두가 국기와 같이 진열됐는데 일본, 북한은 있는데 한국은 없어 다소 서운했다.

4일째, 다시 고속철을 타고 1시간여 떨어져 있는 잉커우(營口)를 찾았다. 잉커우는 중국홍십자의 발상지로 홍십자회 박물관이 있다. 세계적십자의 창립자 앙리뒤낭의 흉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세계적십자의 발생 배경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이 바탕이 되어 결국 스위스의 청년실업가 앙리뒤낭에 의해서 솔페리노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서 탄생됐다는 전시물 게재는 새로운 착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 적십자의 발생도 공자·맹자·묵자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 탄생됐다는 탄생배경, 역시 나에겐 새로운 시각의 발견이다. 이제껏 대한국적십자 탄생배경은 정신적 지주(支柱)를 내세운 적이 없다. 그저 ‘114년 전에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거 탄생됐다’라고 시작된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퇴계와 율곡사상 등의 정신이 녹아 고종이 마침내 대한적십자를 만들었다고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신이 없는 몸체는 없다. 진정한 여행은 그저 있는 풍경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셈이다. 여행은 경치를 보는 것 이상이다. 아마도 여행은 깊고 변함없이 흘러가는 생활에 대한 생각의 변화일 듯하다.

마지막 날, 선양시내 제일 소학교를 참관해 학생들의 무용, 시낭송 등을 관람하고 과학실, 서예실을 차례로 방문, 학생들의 인문학 실기를 보았다. 다시 교정을 나와 지진대피훈련을 참관했다. 사이렌이 울리며 전교생이 운동장에 학년별로 대피한다. 사상자를 구호해 심폐소생술로 응급처치를 하고 부상자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는 실연(實演)을 한다. “중국의 미래를 봤다”고 인사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선양홍십자회 부회장과 비서장이 공항까지 출영(出迎)나왔다. 또 내 생에 다시 만날 날이 없을 듯해 일까. 손을 흔들며 떠나는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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