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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뜨락]선승의 죽음

 

 

잔잔이라는 선승이 있었으니 갑자기 여장을 꾸리더니 제자를 불러 말했다.

“너에게만 작별인사를 할 터이니 다른 이들 모르게 가서 삿갓을 좀 가져다 다오.”

제자가 삿갓을 가져오자 잔잔은 그를 데리고 절을 떠났다. 한참을 걷다가 어떤 커다란 소나무 아래서 잔잔은 제자에게 말하길 ”나는 이제 갈련다. 뒷 일을 잘 부탁한다”며 그대로 숨을 거두어 버렸다. 짚신을 신고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선 채로 잔잔 선사는 임종을 한 것이다. 세수 84세 입망(立亡). 입망은 선 자세로 열반(涅槃)에 드는 것을 말한다.

선승이 앉아서 또는 서서 맞이하는 최후인 좌탈입망(坐脫立亡)이 흔한 일은 아니나 죽음을 초월해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자재함을 엿볼 수 있다.

불가에서는 스님들이 죽음에 이르면 마지막 말을 한 편의 시로 남기는 전통이 있다. 이를 임종게(臨終偈)라고 한다.

타쿠앙 선사는 죽을 때가 되었지만 임종게를 남기려하지 않았다. 이런 스승의 태도에 제자들은 재촉을 했지만 다쿠앙은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이에 제자들도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인 임종게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거듭 간청하는 것이었다. 결국 다쿠앙은 붓을 들어 글자를 쓰니 꿈몽(夢)한 자였다.

임종게뿐 아니라 다쿠앙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선승 다웠다.

“장례 따위를 치르지 마라. 내가 죽으면 내 주검을 남 모르게 옮겨 들에 묻어라. 그리고 잊어라. 당연히 부도니 탑이니 만들지 마라. 땅에 묻은 뒤에는 두번 다시 찾아오려 하지마라. 그 어디서고 부조금도 받아서는 아니되며 위패 또한 필요없다. 49재 등 일체의 의식을 원치 않는다. 나라에서 무엇이 오더라도 절대 받지말라”고 했다.

나의 죽음을 만나거든 개의치말고 차나 새로 끓이라고 당부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훌쩍 떠나 있음을 나타낸다. 몸이 사라지면서 그는 존재 자체가 된 것이다. 우주가 된 것이다.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람 부는 하루 그 결에 다녀가마”라고 말하고 있는 배경이다.

‘존재’로서 늘 함께 있고 ‘공’으로 모두가 하나이니 “기다릴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몸조심들 하고’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떠나 헤어지게 되었지만 서로의 인연을 되새김질하는 사람으로서의 감성을 드러냄으로서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세계는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일까? 나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평생을 관통하는 화두이다. 결국 마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 꿈에서 깨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우주(내)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붓다께서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생(生) 할 수 없고 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 안에 주체나 실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공(空). 다만 인연따라 나타났다가 인연따라 사라진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몸과 마음이 실체가 아니고 우연한 사건이나 현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나는 ‘관념’일 뿐이라는 놀라운 눈이다. 그러므로 나는 태어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아니라는 깨우침이다. 그 어떤 존재도 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모든 존재란 본시 공(空) 이라는 통찰이다. 표현은 다르겠지만 붓다의 깨우침과 일치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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