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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앙리 루소가 창조한 독창적인 세계

 

 

 

차가운 보름달이 떠 있는 하늘의 빛깔은 신비롭기만 하다. 달빛이 드리운 가지런한 땅 위로 한 집시 여인이 잠을 자고 있다. 미처 내려놓지 못한 지팡이는 그의 손에 꼭 쥐어져 있고, 꿈속에서도 먼 길을 헤매고 있는 듯 자면서도 살짝 뜬 두 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 모양이다. 피부가 까만 그의 얼굴은 피로로 일그러져 있는 것 같다가도 살며시 미소 짓는 것도 같다. 자그마한 악기도 그의 곁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가 입고 있는 다채로운 색깔의 줄무늬 드레스가 지친 그의 모습과 대비되어 인상적이다. 그의 곁에는 사자 한 마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이 짐승은 집시의 뒤편에서 먼 곳을 응시하며 그렇게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앙리 루소가 1897년 완성한 ‘잠자는 집시 여인’이라는 그림이다. 작품은 공상의 세계를 담고 있으며 신비롭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지금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지만, 루소가 살아있던 당시에는 냉대를 받았던 작품이다. 루소는 이 작품을 자신의 고향인 라발 시에 팔고 싶었지만, 작품은 가차 없이 거절당했다.

위대했지만 불운했던 화가들의 다수가 그러했듯, 루소 역시 생전에는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인정받는 걸 보지 못했다. 우거진 밀림, 야수들, 독특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 등, 그의 작품은 이국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그의 작품은 기이하게 여겨지기 일쑤였고, 정식 미술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던 화가의 경력은 그의 작품 세계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장애요인이 됐다. 인상주의 화가들 중 연장자이자, 각양각색의 화가들을 두루 포섭할 줄 알았던 피사로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상주의전’으로 그를 초대했지만, 전시에 함께 참여했던 동료화가들 역시 루소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건 매한가지였다.

훨씬 더 젊고, 재기발랄한 후배들이 그의 작품에 감탄하며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가 쉰이 다 되어서였다. 이들 젊은이들 무리 중에는 피카소, 브라크, 시인 아폴리네르와 같이 후일 유명인사가 될 이들이 있었고, 이중 몇몇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로부터 영감을 얻어 ‘초현실주의’라는 유파를 형성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들에게 무의식이라는 무한한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고, 덕분에 화가들은 실재하진 않지만 상상 가능한 세계를 거리낌 없이 캔버스 위에 펼치기 시작했다. 루소는 이들보다 훨씬 앞서 꿈과 상상 속 세계를 캔버스에 그렸던 화가였기에 이후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루소의 투박하면서도 천진무구한 세계는 그 이후 어떤 화가들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일생동안 가난에 찌들었던 화가는 한 번도 프랑스를 벗어나보지 못했지만, (루소는 가끔 자신이 직접 외국을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집 근처 공원과 식물원을 산책하며, 때론 화집에 실린 다른 나라 동식물들의 이미지를 관찰하며 이처럼 천진한 세계를 창조했다. 그가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림을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던 평범한 세관원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품에 담긴 순수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고인이 된 화가가 들었으면 서운해 할 말이다. 루소는 성실한 화가였고, 세관원 직을 그만 둔 이후로는 전업 화가로서 일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진정 위대한 화가이며, 머지않아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걸 의심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르누아르조차 루소의 작품에 담긴 탁월한 색채와 우아한 형태를 칭찬했을 정도이다. 르누아르는 루소의 작품에 퍼붓는 비평가들의 조롱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앵그르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그의 작품을 칭찬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선사하지 못하는 감동이 그의 작품에 담겨있는 것은, 그가 그린 공상의 세계에서조차 직장인으로서, 노동자로서 땀 흘리며 전전긍긍하던 그의 수고가 묻어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카데미 출신 화가들처럼 빠르게 붓질을 할 수 없었던 루소는 한 획, 한 획을 찬찬히 그으며 그 탄탄하고도 서정적인 세계를 지독히 성실하게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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