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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홍경희

없다 방이, 방이 보이면 방이 없고 이미 방이 아니다 빈 방이 속삭이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침대는 아직 잠들어 있고 잠든 침대를 안고 빈 방이 침대에 눕는다 잠든 침대는 잠을 자지 않고 빈 방은 침대를 안고 빈 방을 깨운다 그 빈 방이 거울 앞에 눕고 그것은 방을 거부한다 빈 방은 휴대폰의 화면에 갇힌 블랙홀이다 방을 집어 삼킨 거울은 구토하지 않는다 빈 방은 방이다 물구나무를 서서 방을 찾고, 금속활자들이 날아다니는 빈 방, 입이 있으나 입이 없는 빈 방이 빈 방을 밀어내는 시간, 빈 방처럼 누워 빈 방이 너를 찾고 있다.

 

 

“방이 보이면 방이 없고 이미 방이 아니다”라는 문장에서 시인은 지나가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지금 감각적으로 소여되는 ‘것’을 분절한다. 그가 바라보는 ‘방’은 일정 기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뒤틀리고 균열이 나 있다. “빈 방이 속삭이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라는 문장처럼, 그는 ‘방’에서 그 방의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시인에게 방이란 ‘기억-이미지’의 가장 무겁고 원초적인 공간일지 모른다.이러한 균열/뒤틀림은 “잠든 침대는 잠을 자지 않고 빈 방은 침대를 안고 빈 방을 깨운다 그 빈 방이 거울 앞에 눕고 그것은 방을 거부한다”에서 좀 더 명확해진다. 통상 방과 침대는 계열을 형성한다. 방의 아늑함은 곧 ‘잠’이라는 침대를 계열화하고 멀리 초록의 강물이 보이는 ‘창문’이나 시인을 비추는 ‘거울’을 소환한다./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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