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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나의 자존감의 근원, 어머니

 

어머니는 초등학교 내내 나를 업고 등하교를 시켜주셨다. 엄마 등에 업혀서 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창피하지 않았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서 그런 걸까. 용감하고 위대한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학교로 부터 개근상을 받으셨다.

간호사 얼굴이 그려진 연두빛 통의 안티푸라민 연고를 보면 항상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나의 만병통치약으로 쓰던 안티푸라민 연고는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33년 유한양행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당시 소아과 의사였던 아내의 도움을 받아 자체 개발한 첫 의약품이라고 한다. 관절염, 신경통, 근육통 등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멍든데나 벌레물린데에도 두루두루 쓰였다. 나는 어디 아팠다 하면 무조건 안티푸라민을 발라주셨던 어머니의 손이 기억난다.

어릴 때 “엄마 배 아파”라고 하면 배에다가 안티푸라민 연고를 발라 주셨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이마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고. 얼마나 웃긴가. 사실 안티푸라민의 주성분은 멘톨, 캄파, 살리실산…. 파스나 벌레물린데 들어가는 약 성분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기억하면 떠올리게 되는 안티푸라민….

나에게는 상처 나거나 콕콕 쑤시거나, 멍들거나…. 온갖 크고 작은 아픔에 함께 했던 안티푸라민 연고를 어머니가 발라주면 희한하게도 아픈 데가 싹 나았다. 진짜 약의 효능이 작용한 것인지 아니면 소위 말하는 플라시보 효과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으로 낫게 된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냥 무조건 어머니 손은 약손이었다.

그 옛날 어디 다치거나 배가 아프면 손으로 이곳저곳 문질러 주시던 어머니의 약손. 주물러주고, 쓸어주고, 짚어주고, 만져주고…. 어머니의 손은 본능적인 행위였다. 자연 그대로의 치유의 힘을 지닌 손 말이다.

왜 어머니 손은 약손이었을까. 유능한 스포츠 마사지사가 오일을 발라서 지압점을 꾹꾹 눌러가면서 마사지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의 병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내 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래서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온기는 어머니 손 밖에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만져 줄 때 행복감을 느낀다. 따스한 촉감과 터치는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한 인정 욕구가 생긴다. 내가 긍정적인 태도로 평생 살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플 때 언제나 안티푸라민을 발라 주며 괜찮다, 괜찮다 문질러 주신 어머니의 손길 때문이다. 사람의 몸의 기억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불쾌하거나 수치스럽거나 폭력적인 몸의 상처가 평생토록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자아정체성이나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사람은 대부분 몸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장애를 갖고 자라났지만 내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뭘까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못났다 혹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나의 몸을 이렇게 만들어 주신 부모에 대해서 원망한 적도 없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부모에 대해 후회스러운 감정을 갖지 않았다. 이것은 내 운명, 나의 업보다, 밝고 명랑한 삶을 알게 해 준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안티푸라민’이다. 92세에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그저 막내아들에게 넘치도록 사랑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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