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링컨 다시보기]민주주의 신봉자 링컨의 여론정치

 

링컨은 정치활동을 통해 항상 여론의 흐름에 민감했다. 여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서 대통령의 자리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사람이었다. 혼돈의 시기 한 가운데서도 링컨은 여론의 향방에 항상 깊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의 여론을 향한 뛰어난 감수성은 정치활동 속에서 몸에 밴 것인데, 전시에는 더욱 뛰어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는 여론의 노예는 결코 아니었으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그의 한 쪽 눈은 항상 여론에 고정돼 있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가 공식적으로 침묵을 지킨 것도 남부의 여론과 대다수 공화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링컨은 특히 한 가지 점에서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할 상황을 대비해 정부에 대한 지지여론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빈틈없는 과정을 밟아 나갔다.

다른 정치인들이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링컨의 업적은 연방의 민심에 청진기를 들이대고 이를 정확히 파악해, 완벽한 시기(timing)에 국가적 목표의 정의를 재해석해 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시기에 대한 판단력과 관련해 정치인들은 링컨의 위대함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링컨은 국가정책은 여론에 부응해야 하고, 여론과 동떨어진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온몸의 세포는 철두철미 여론의 동향에 곤두서 있었다. 링컨은 진정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이었다. 그는 최적의 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망설이지 않고 전진했다. 링컨 스스로도 전쟁의 목적을 재해석하는 각 과정이 자신의 여론에 대한 이해와 궤를 같이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링컨은 몇 가지 수단을 활용해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전쟁 4년 동안 평균 두 달에 한 번씩 중요한 연방 및 주 의회 선거가 치러졌는데, 각종 선거결과를 민심을 읽는 시금석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는 선거결과를 분석하는 데 열중했다.

둘째, 링컨은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정치지도자들, 혹은 각 주의 정치지도자들과 자주 대화를 갖는데 노력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여론의 흐름을 짚어냈다. 셋째, 충복인 비서들을 지역현장으로 자주 파견해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방법을 통해 민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 등으로 여론이 자칫 왜곡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수족과도 같은 비서들의 입을 통해 정확한 민심을 전달받았다.

넷째, 링컨은 여론의 맥박을 측정할 수단으로 미국정치 시스템의 혈액과도 같은 신문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언론과 여론을 혈관의 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각종 신문의 논조를 열심히 분석했고, 왜곡 보도일 경우 신문 편집자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설득하기에 노력했다.

다섯째, 링컨은 서민대중들로부터 직접 의견을 듣기에 노력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백악관은 그를 만나러 온 수많은 보통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그는 이런 만남의 시간을 ‘여론에 몸을 담그는 시간’이라며, 접근을 제한하자는 주변의 제안에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닌 민중의 공복이라는 그의 신념과 서민들에 대한 동류의식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링컨에게 다가갔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밑바닥 서민생활을 경험했던 링컨은 보통사람들의 지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정서와 희망을 감지하는 천부적인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대중이 정직하고 선량하다고 믿었다. 이 같은 대중에 대한 그의 신뢰는 그로 하여금 보통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리도록 했고, 여론의 근간인 그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접하게 했다.

링컨의 큰 자질은 여론을 정확하게 읽고, 여론의 추이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기까지 여론이 성숙되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의 점진주의는 진보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급진적 행동은 반드시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을 불러올 위험성이 있고, 급격한 변화는 스스로 붕괴할 수 있다는 현실정치에 대한 이해에 바탕한 것이다. 그가 이처럼 철저하게 여론을 존중하는 정치를 펼쳤다는 것은, 링컨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민주주의 신봉자였다는 말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