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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뜨락]부정관(不淨觀)

 

 

인간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의학적으로 죽음은 심장기능의 정지를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죽음이란 ‘소생할 수 없는 삶의 영원한 종말’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죽음의 사전적 의미는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 즉 생(生)의 종말을 가리킨다.

죽음에 대해 의학적으로 심정지설(심장정지설, 심폐정지설)과 뇌사설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고 하는데, 심정지설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장기 중 하나인 심장의 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죽음으로 보는 것이며, 뇌사설은 전뇌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소실된 상태, 즉 뇌 전체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경우를 죽음으로 본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태아→<출생>→사람(人)→<사망>→사체(死體)의 과정을 거친다.

인간은 출생해 육신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며 애착하고 돌보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이 오더라도 누구나 육신에 대한 애착은 쉽게 버릴 수 없다고 한다.

육신에 대한 집착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 생에 태어나는 요소로 작용하기에 붓다께서는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수행으로는 부정관(不淨觀)이 있다. 수행자는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육신의 덧없음을 깨우치고 탐욕, 특히 이성에 대한 정욕을 없애기도 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부정관을 통해 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육신에 대한 애착을 제거하면 생사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게 된다고 일러준다.

육신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싸여 있고, 모든 종류의 더러움들로 가득 차 오직 갖가지의 부정하고 냄새나는 물건으로 가득 차 있음을 여실히 생각하여 이 몸을 탐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심지어 붓다께서는 인간의 몸은 온갖 세균으로 가득차 있어 더러운 시신 쓰레기장이라고 하며 80가지 종류의 벌레가 살고 있으며 피부에 의지해서 사는 벌레들은 피부를 먹고, 속살에 의지해서 사는 벌레들은 살을 먹고, 벌레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서, 늙고, 죽고, 분비물을 배설한다. 육신은 몸안에 있는 벌레 때문에 병이들고 더럽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란 이 지상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시간을 누릴것 처럼 산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음을 인지하고 촌각을 다투어 삶을 영위해야 한다.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수행자는 삶을 무의미하게 허비할 수가 없다.

모든 헛 된 것에 집착하지 않고 목숨에 대해 집착 하지 않고 많이 축적하지도 않으며 물건에 대한 번뇌와 인색함을 버리며 무상을 느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닦지 않는 중생은 죽을 때에 공포와 몽매에 빠지며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 인 것처럼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늘 죽음에 대한 명상과 몸뚱이가 부정하다는 관을 하는 수행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몽매에 빠지지 않고 이 몸이 물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은 것임을 깨달아 몸의 실상을 알고 집착을 버리고 죽음의 굴레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라고 붓다께서는 자상하게 일러 주신다.

제 아무리 미인 이라도 세월을 견딜수는 없으며, 천 만고의 영웅 호걸도 결국은 북망산의 무덤을 이루는 이치를 알면 곧 삶과 죽음의 덧없음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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