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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공감 능력의 상실?

 

 

 

“당황스럽고 기가 막혔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 갖은 생각이 다 들었어요. 유가족을 불러놓고 이건 아니지 않나 생각했어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럴 용기가 없었는지...”

이것은 KBS가 보도한,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아내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숨진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지난 6월 4일 청와대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240여 명을 오찬에 초청했다. 오찬 테이블 위에는 ‘여러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팸플릿이 놓여 있었는데, 이 팸플릿에는 오찬 메뉴와 함께 사진 5장이 게재돼 있었다. 그런데 이중 2장의 사진은 김정은의 모습이 들어간 사진이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남편을, 혹은 자신의 자식을 죽인 북한의 최고 권력자의 사진이 들어간 팸플릿을 본 유가족들의 심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걸 단순한 해프닝 혹은 에피소드로 취급할 수 있을까? 그건 절대 아니라고 본다. 국가를 위해 북한에 의해 희생된 유가족들 앞에, 그 원흉의 사진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청와대는 이런 반응을 내놓았다고 한다. 우선 이런 사진들이 들어있는 팸플릿은 올해 1월부터 제작해 사용해 왔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번 행사 때만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어떤 청와대 관계자는 “6.25나 천안함, 연평해전 같은 비극적 희생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건데…”라고 말했다고 KBS는 보도했는데, 이런 식의 언급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상대방의 심정’을 너무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이런 사진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을 역설하고 싶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대상에 따라 설득 혹은 필요성의 역설에 대한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은 간과됐다는 것이 문제다.

북한에 의해 가족이 희생된 유가족들에게, 그 가족을 죽인 원흉의 사진을 보여주며 평화를 말하려 했다는 것은, 이런 행위가 이들 가족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공감 능력이 상실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지난 1월부터 청와대가 이런 사진을 사용해왔다는 것도 변명조차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오찬 대상의 일부가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과정에서 전사한 유공자의 가족이라면, 설령 원래 사용했던 사진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다른 것으로 대체했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고려없이 초청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오찬을 갖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마디로 오찬에 초청한 손님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주최한 자신들의 ‘주관적 생각’만으로 ‘오찬 손님들’을 ‘대접’할 바엔, 뭐하려 이들 유가족을 초청했냐는 것이다. 이는 역지사지 이전의 문제다. 역지사지가 상대방의 입장을 듣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번 행동은 가장 원초적이고 기초적인 감정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대체로 분위기는 좋았다”고 했단다. 유가족들이 현장에서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했는지는 모르지만, ‘분위기’가 좋았다는 청와대의 주장 역시 자의적 해석일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유가족들의 기본적인 마음마저 헤아리지 못한 사람들이, 분위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했으리라고는 좀처럼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조심하는 것은 소통을 위한 기본적인 전제다. 이런 전제의 충족 없이 소통을 말한다면, 이는 일방통행식 주장을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청와대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청와대가 권력의 중심인 것은 맞지만, 대통령을 잘 보좌해야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상대방 감정의 자의적 해석은 하루빨리 제거돼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보좌의 기능을 할 수 있고, 추락하고 있는 지지율의 회복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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