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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무너지는 집

무너지는 집

/김참

집이 무너진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는 골목. 그 골목 초입에 있던 떡갈나무. 어디로 갔을까. 참새들이 곡선을 그리던 공중의 길. 붉은 가위표 새겨진 이층집 지붕에 녹색 잠옷 입은 염소들이 누워 있다. 내일이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오래된 집들. 그리고 녹색 잠옷 입은 염소들. 회색 시멘트 블록의 담과 붉은 벽돌로 쌓은 벽.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던 자리가 텅 비었다. 녹색 원피스 입은 여자가 건너편 커피점에 앉아 무너지는 집을 본다.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녹색 잠옷차림 염소들을 본다. 염소들이 골목 입구에 잠옷을 벗어두고 줄을 맞춰 횡단보도를 건넌다. 오래된 집들이 있던 골목을 떠난다.

- 김참, ‘무너지는 집’ 전문

 

 

 

 

시인은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는 골목”을 걷는다. 그가 걷는 ‘골목’의 집들은 “내일이면 없어질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됐기 때문에 이미 ‘폐허’의 한 가운데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길은 막혀 막다른 골목이고 군데군데 페이지가 찢긴 낡은 책과 같다. 그런데 골목의 귀퉁이에서 그는 “붉은 가위표 새겨진 이층집 지붕에 녹색 잠옷을 입은 염소들”을 발견한다. 여자의 눈은 시인과 묘하게도 같은 곳을 바라본다. 출입이 금지된 ‘닫힌 길’에서 서로 다른 좌표에 위치하지만, 그들은 동일한 감각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그들은 저 파국을 증언하고 붕괴되는 ‘집’의 원형을 기억할 유일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는 충분히 의도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염소’와 ‘여자’도 마찬가지. 양자 모두 ‘녹색’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닫힌 길’의 붕괴와 균열, 공백을 메우게 한다./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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