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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인간 이희호, 여성 이희호, 별이 된 이희호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참 힘든 일이다. 쉼없이 흔드는 바람앞에 선 나뭇가지보다 더한 사회적 불평등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인동초보다 더 강한 의지로 한세월 풍미했던 별이 졌다. 아니 별이 됐다. 고(故) 이희호 여사. 10일 늦은 밤 세상을 떠났다. 여성운동가, 민주주의자, 통일운동가 또 환경운동가로 수많은 씨앗을 세상에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삶을 살았다. 그 열매 가운데 한사람인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그녀를 이렇게 추모한다. “이희호 여사님이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긴급조치때는 영치금을 보내주셨고 결혼식때는 축하해주셨고 환경특강때는 경청하신 후 김대중 대통령께 환경문제의 핵심은 주민운동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길로 가겠습니다.” 이재준 더불어민주당 수원갑(장안)지역구위원장은 “여사님의 유지를 받들어 소수자 인권운동과 더 좋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고 존경을 표했다. 이날은 하늘아래 살아움직이는 대부분이 슬퍼한 날로 기억되리라.

그녀에게 붙이는 모든 헌사 가운데 앞자리는 당연히 ‘인간’ 일게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는 공교롭게도 전두환 씨와의 만남에서 돋보인다. 고인의 회고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을 위해 전두환 씨를 찾아갔던 대목이 나온다. 그때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은 이 여사에게 “각하와 악수할 때 각하의 손이 아플 수 있으니 반지를 빼라”고 요구했단다. 그래서 ‘뺐다’는 내용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남편의 생명을 앗으려는 이들에게 고인은 끝까지 인간의 도리를 몸으로 직접 보였다. 또 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퇴임 후 방문한 자리에서다.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 바르게 사는 삶이 인간이 지니는 최고의 덕목이라는, 삶과 바름이 둘이 아니라는, 이 말이 ‘평생 삶의 나침반으로 각인됐다’고 정 전의장은 고백한다.

남편을 앞세우고 아들의 죽음조차 알지 못하고 요단강을 건넜으니 여성으로 꼭 행복했다고 보기는 힘들겠다. 범인(凡人)에게는 회한으로 남을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의 유언은 이 모든 번뇌를 고인 스스로 잘 극복했다고 증언한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죽는다고 누구나 별이 되지는 않는다. 유한한 삶을 무한하다고 착각해 억지를 부리기 때문이다. 이희호, 그녀가 이제 별이 됐다. 사람다운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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